청와대 소장 안중근 유묵, 잘 있을까?
<제언> 안중근 유묵은 모두 안중근의사 기념관으로 이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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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오래 전부터 프랑스에 있는 우리 문화재, 외규장각 반환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 외규장각이 145년 만에 5월쯤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최근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뿐 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환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약탈된 문화재는 본래 있었던 곳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문화재를 약탈해간 세력이나 집단은 이미 문화재를 소장할 자격이 없는 반문화집단이기 때문입니다.
 
101년전인 191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장군이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이 개인 감정이 아닌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 일환으로 적장을 죽인 것이기 때문에 형사범이 아닌 국제법에 의해 전쟁포로로 대우하라고 했던 안중근은 상고를 포기하고 안중근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면서 "국가안위노심초사" "위국헌신군인본분" 등 자신의 심정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여러가지 내용을 담은 붓글씨를 쓰면서 "대한국인 안중근"이란 이름 아래 단지한 왼손바닥에 먹물을 묻혀 손바닥 도장을 찍었습니다.
 
안중근 장군은 사형선고 후 40일 만인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했습니다. 안중근 붓 글씨, 유묵은 안중근 장군이 사형선고를 받은 1910년 2월14일 부터 순국하신 3월 26일 사이인 40여일 간 수감 중이었던 중국 뤼순감옥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유묵 마다 '뤼순 옥중'에서 쓴다는 장소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30살의 사형수 안중근 장군 유묵은 현재 60여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진품으로전해지는 것도 있고 진품 대신 복사본으로 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진품의 경우는 한국, 일본, 중국에 분산되어 있고, 한국의 경우 극히 일부가 서울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 기념관에 있고 상당수는 국가기관과 대학 그리고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유묵 중에서 한국에서 진품으로 확인된 26점이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끔씩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안중근 유묵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고가로 판매되기도 합니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남긴 안중근 유묵이 경매장에서 고가에 사고 팔리고 하는 것을 안중근 장군이 안다면 참으로 슬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중근 장군은 자신이 쓴 붓 글씨를 뤼순감옥과 뤼순재판소에 있었던 일본인들에게 기증한 기록이 있습니다. 뤼순 감옥 간수, 통역관, 재판소 검찰관 등에게 자신의 붓 글씨를 주면서 글씨 상단 오른쪽에 붓 글씨를 받는 사람의 이름을 명기했습니다.

안중근으로 부터 붓 글씨를 받은 일본인들은 그 글씨를 매우 소중하게 간직했고 그 후손들이 안중근 붓 글씨를 한국에 기증한 사례도 있습니다. 자신의 선조가 안중근 장군으로 부터 직접 기증 받았지만 이 유묵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소장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국가 보물로 지정된 위의 안중근 유묵 두 점은 안중근 장군으로 부터 직접 글씨를 기증받았던 일본인 후손들이 한국에 조건없이 기증한 것이다.  안중근 유묵은 모두 안중근 기념관에  소장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 단지12 닷컴    ©단지12 닷컴
안중근 유묵을 한국으로 기증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형수 안중근으로 부터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라는 글을 기증받은  당시 뤼순법원 검찰관 야스오카의 큰 딸이 1976년 재일본 한국역사학자 최서면 박사를 통해 서울 안중근기념관에 기증한 것이 있습니다. 이 유묵은 2000년에 보물 제 569-22호로 지정됐습니다.

보물 제 569-23호로 지정된 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도 뤼순감옥에서 간수로 근무했던 헌병 지바도시치 손녀가 1980년에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보물급 유묵들을 일본인들이 아무 조건 없이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중근 장군이 사형당 한 후 수감 중에 집필한 자서전과 집필 중이었던 동양평화론 그리고 유묵 등 유품은 유족에게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집필한 책과 보관 중인 유묵 등 유품은 사실상 일본들이 탈취해갔고 유해는 유가족들이 모르는 곳에 매장해 100년 동안 그 소재조차 파악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유해는 어디로 간데 없지만 유묵은 지난 100년 동안 일본과 한국 중국 등지를 넘나들고 심지어는 최근까지 경매장에 고가의 매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경매장에 나타난 안중근 유묵을 대한민국 언론은 고가에 경매가 됐다고 대서특필합니다.
 
100년 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안중근 유묵은 특정인의 이름이 명기되어 기증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난 당한 것이라는 해석을 할 수있습니다. 유가족에게 전달돼야 할 유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개인이나 대학 등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상당수 안중근 유묵은 일본을 거쳤거나 일본인 통해 한국으로 유입된 것이 확실합니다. 개인이나 대학 등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안중근 유묵 마다 소장경위를 파악 할 수 있다면 분명 떳떳치 못한 과정을 거친 유묵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안중근 유묵이 유해, 유품과 함께 100년 전에 안중근 유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사실상 도난에 가깝게 분산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 후 유묵의 흐름은 모두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2010년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기 10월 26일, 서울 남산에 안중근 기념관이 새로 준공 개관했습니다. 이 기념관은 국가예산 국민혈세 150억과 국민성금 30억으로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새로 지어진 안중근 기념관에 안중근의 모든 자료와  유묵도 함께 소장돼야 합니다. 안중근 유묵이 더 이상 경매장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투기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중근의 민족정신이 경매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보물이 경매장에 나돌아다니는 것도 문제입니다.
 
해외에 산재해 있는 대한민국 문화재가 모두 대한민국으로 환수되어야 하듯이 안중근 유묵 또한 안중근 기념관에 질서있게 소장되고 전시되어 우리가 그 곳을 민족정기의 산실로 여기고 안중근의 민족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본인들은 안중근 유묵을 안중근기념관으로 기증하는 마당에 우리는 한국에서 안중근 유묵을 경매해서 돈 벌이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중근 장군이 매우 슬퍼할 것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안중근 유묵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 不足與議) 소장자자 대한민국  청와대로 되어 있습니다. 1972년에 보물(제 569-4호)로 지정된 이 유묵이 청와대 어디엔가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장군 유묵이 잘 걸려있는지도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궂은 옷을 입고, 궂은 밥 먹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자와는 함께 의논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101년 전에 감방에서 쓴 안중근 유묵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 의해 청와대까지 전달됐는지 40여년 전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알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청와대에 있다는 안중근 유묵이 청와대 어느 곳에 보관 중인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 유묵은 원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소장했던 것인데 현재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와대 어느 곳에 걸려있는 것인지 후미진 청와대 창고에 보관 중인 것인지, 관리 소홀로 망가진 것은 아닌지, 소재파악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도 됩니다. 
 
국가예산과 국민성금으로 새로 지어진 안중근 기념관에 모든 안중근 유묵이 소장되고 전시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1차적으로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는 유묵이 순국 101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안중근기념관으로 아름답게 이전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묵 한점과 해군사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유묵 두 점도 안중근 기념관으로 이전, 전시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안중근 유묵이 박물관 보다는 기념관에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뿐 만 아니라  동아대학교, 숭실대학교, 홍익대학교, 단국대학교에 있는 안중근 장군 유묵도 순차적으로 안중근 기념관에서 모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사설기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다는 유묵 두 점도 넉넉한 마음으로 안중근 기념관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2차적으로 일본인 소장자나 일본대학 등 기관을 찾아 안중근 유묵의 한국반환을 정중하게 요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가 한국 문화재 외규장각을 소장하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입니다. 안중근 장군 유묵이 있야 할 곳은 국민성금과 국가예산으로 잘 지어놓은 안중근 기념관 아니겠습니까?

<정광일 /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대표> 
 

▲  부천 안중근 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장군 유묵비 "자애보"  1910년 3월 안중근 장군이 뤼순감옥 감방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쓴 이 글은 "자신을 보석 처럼 사랑하라"는 뜻이다.    © 단지12 닷컴

기사입력: 2011/02/13 [18:35]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11/04/02 [17:22] 수정 삭제
  안중근으로 부터 붓 글씨를 받은 일본인들은 그 글씨를 매우 소중하게 간직했고 그 후손들이 안중근 붓 글씨를 한국에 기증한 사례도 있습니다. 자신의 선조가 안중근 장군으로 부터 직접 기증 받았지만 이 유묵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소장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Monster Energy Hats Air Max 24-7 New York Yankees Hats Baseball Caps new era caps Baseball h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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