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의 전당 함평에 안중근동상 제막
<안중근 장군 동상제막식> 이낙연 국회의원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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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제막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회의원   ©단지12 닷컴

오늘은 안중근 장군께서 순국하신지 꼭 100년 되는 날입니다. 100년 전 오늘, 만주 땅 여순(旅順)에서 서거하신 안중근 장군의 동상을 우리 고장 함평에 모시게 됐습니다. 민족혼의 표상이신 민족의 영웅 안중근 장군을 가까이 모시게 되니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감개무량합니다. 함평군민 여러분께 축하를 드립니다. 장군의 동상을 세워주신 안중근평화재단과 동상을 유치한 함평군에 감사를 드립니다.
 
안중근 장군의 동상은 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신 김철 선생의 동상과 가까운 곳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두 분의 민족지도자가 모셔진 이곳 함평군 상해임시정부 청사는 민족혼과 역사의 정의를 만대에 길이 전할 민족혼의 전당, 역사의 전당이 됐습니다. 함평군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안중근 장군은 그냥 장군만이 아니셨습니다. 위대한 사상가요, 문장가이기도 하셨습니다. 장군은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시면서 ‘동양평화론’을 쓰셨습니다. ‘동양평화론’에서 장군은 당신이 갇히신 여순을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아시아 평화도시로 건설해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만들자고 제창하셨습니다. 당신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동양평화를 위해 동양평화의 원흉을 살해한 전쟁이었다고 규정하셨습니다. 서른 살, 서른한 살에 그런 구상을 하고 그런 글을 쓰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안중근 장군의 글씨는 얼마나 힘차고 아름답습니까. 안중근 장군의 족적을 살필 때마다, 저희들이 얼마나 작고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통절하게 깨닫곤 합니다.
 
안중근 장군은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갇혀 계시면서도 국제정세를 소상하게 파악하시고 그 해박한 식견을 말로 하시고 글로 쓰셨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일한 일본 관리들까지도 안중근 장군을 존경했습니다. 당시에 많은 일본 관리들은 안중근이라는 위대한 인간이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안중근 장군에게 상소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장군은 상소하지 않고 당당히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무렵에 안중근 장군은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만주 하얼빈의 안중근기념관에 가서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저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이셨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아들에게 죽으라고 권하는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중근 장군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셨겠습니까만, 장군의 어머니는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그런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민족과 역사를 위해 옳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으셨기에 안중근 장군은 민족의 가슴 속에, 민족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안중근 장군은 비록 서른한 살의 꽃다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셨지만, 그의 기상과 사상은 민족과 함께 영구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안중근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이 자리에서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장군의 마지막 유언의 한 토막은 이렇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통일되지 못했으나, 안중근 장군의 비원대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안중근 장군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의 유해가 어디에 모셔졌는지 일본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일본 정부에 강력히 요구합니다. 일본은 안중근 장군의 유골을 찾아 우리에게 보내주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안중근 의사를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의 호칭만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도 ‘의사’와 ‘장군’의 호칭을 병용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은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은 개인자격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조국독립을 위한 전쟁에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안중근 장군’의 호칭은 거기에서 유래합니다.
 
이번에 안중근평화재단과 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일계급 특진 국회의원 100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152명의 국회의원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안중근 장군의 동상을 제막하면서 민족과 국가 앞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엄청나게 부족하지만, 늘 안중근 장군의 사상과 기상을 생각하며 제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겠습니다.
 
2010년 3월 26일 ]

전남 함평 안중근장군 동상 제막식장 축사


기사입력: 2010/03/27 [10:56]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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