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100주기, 안중근장군 유묵 다시읽기
유묵으로 보는‘ 안중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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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의 의거·순국 100년을 맞아 단 한 가지라도 철저한 고증으로 사실을 밝히고 그를 제대로 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0년 1월 2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안중근 유묵전-독립을 넘어 평화로’가 그 한 축이다. 단추 하나 남기지 않은 안 의사가 유일하게 남긴 유품이라 할 글씨 34점과 원판사진자료 등 70여 점이 한 세기 만에 처음 한자리에서 공개돼 그를 증언한다.

◆사형 앞둔 최후의 40일에 집필=안중근은 어린 시절 독선생을 두고 동양 고전과 한문 교육을 받았다. 19세에는 천주교 세례를 받으며 신학문에도 눈떴다. 늘 책을 읽고 신문을 구독하며 역사의 흐름과 동서양의 만남을 주시했다. 한 손에 총을, 또 한 손에 붓을 든 문무(文武) 겸비의 선비였던 셈이다. 학교를 설립한 교육 계몽가였고, 평양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운동가였다. 이런 다양한 활동이 녹아 든 것이 그의 글씨였다.

①‘天與不受 反受其殃耳(천여불수 반수기앙이)’. 종이에 먹, 136.8X32.2㎝, 1910년 2월, 보물 569-24, 개인소장. ‘하늘이 주는데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뿐이다’라는 뜻으로 제국주의 일본이 하늘이 주는 것, 곧 천명(天命)을 받지 않으면 반대로 그 재앙을 받으리라는 경고다. 이 글씨의 소장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정갈히 하고 이 앞에서 절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②‘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종이에 먹, 136.2X33.2㎝, 1910년 3월, 일본 야요이미술관 소장.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라는 뜻. 삶과 죽음, 극락과 지옥, 결코 둘이 아니다. 현세에서의 생명은 곧 마감하나 천당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비운 마음을 드러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공]
 
 
안 의사는 사형 언도된 1910년 2월 14일부터 순국한 3월 26일까지 최후의 40여 일간 뤼순 감옥에서 수십 점이 넘는 글씨를 썼다. 그것도 모두 그를 옥에 가둔 적, 일본인이 청해서 써준 것이다.

서예 역사에서 이런 극적 사례는 없다. 옛 글을 보고 베낀 글씨가 아니라 안 의사 몸에 완전히 녹아서 흘러나온 절절한 육필이다. 죽음을 앞둔 31세 장부가 모든 것을 비우고 도인의 심정으로 써내려 간 그 유서야말로 안중근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일종의 사리라 할 수 있다.

◆안중근의 분신이자 인격체인 글씨=안중근의 글씨서체는 해서(楷書)나 해행(楷行) 중심의 ‘안진경체’ 계통이다. 자기 조형이 이미 굳건히 서있는 강직하고 좋은 글씨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예다.

일본인을 꾸짖는 내용에서는 필획에서 칼바람이 인다. 동양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에서는 장엄한 붓 그림자가 드리운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니 하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기도에서는 편안하면서도 온유한 글씨체가 보는 이 마음까지 흔든다. 안 의사가 남긴 『안응칠 역사』가 문자로 기록한 일대기라면, 유묵은 붓으로 정신을 내보인 또 한 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까막눈 후손들이 안 의사의 글씨를 제쳐놓고 그를 연구했다는 일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이 큐레이터는 “안중근의 유묵은 의거·순국 100년이 되는 지금까지 의사로서 주로 알려진 안중근의 이미지를 넘어 평화주의자로서 사상가이자 종교인, 선비이자 대장부로서의 전인격적인 면모를 상당수 복원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제 길을 못 찾고 있는 현대 서예가 되새겨볼 점이 안 의사 유묵에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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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國家安危勞心焦思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폭 42cm, 길이 152cm 명주천에 휘호되었다. 안의사의 애국심이 집결된 유묵이다. 1993년 1월 13일 [危局獻身軍人本分] 유묵과 함께 보물 제1150-1호 (뒤에 제569-22호로 변경)로 지정되고 안의사기념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유묵 오른쪽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왼쪽에 '庚戌三月 旅順獄中 大韓國民 安重根謹拜'라고 씌여 있다. 당시 여순법원 검찰관 안강정삼랑(安岡靜三郞))이 안의사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준데 대한 보답으로 증정한 것으로 안강(安岡)사후 장녀(上野俊子)가 소장하다가 1976년 2월 11일 동경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하여 안의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2. 爲國獻身軍人本分
: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폭 25.9cm, 길이 126.1cm. 명주천에 휘호되었다. 안의사의 숭고한 군인정신을 실증하는 유묵이다. 보물 제1150-2호 (뒤에 제569-23호로 변경) 로 지정되고 안의사기념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서 공판정을 오갈 때 경호를 맡았던 일본군 헌병 千葉十七에게 써준 것으로 안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한 千葉는 제대후 선대(仙臺) 고향에 돌아가서 안의사의 사진과 이 유묵을 고이 봉안하였다. 그의 사후에도 未亡人과 양녀 삼포방자(三浦邦子)가 연이어 받아 봉안하였고 1980년 8월 23일 동경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하여 안의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3. 見利思義見危授命
: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폭 30.6cm, 길이 140.8cm. 한지에 휘호되었다. 보문 제569-6호로 지정되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의로운 생애를 상징한 명언으로 평가된다. 논어 헌문(憲問)편에 "利를 보거던 의(義)를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見危授命),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않고 실천하는 것이다. (久要不忘 平生之言)"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인용된 글이다.

4. 人無遠慮難成大業
: 사랑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폭33.5cm, 길이 135.8cm. 보물 제569-8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論語 영공(靈公)편에 "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人無遠慮)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必有近憂)"고 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안의사의 경륜을 표현한 글이다. 안의사는 을사 5조약 후 중국 上海 등지를 유력하고 돌아와 장기적 안목으로 信川郡 淸溪洞에서 鎭南浦로 이사하고 사재를 기울려 '사흥 민흥 국흥(士興 民興 國興)'의 뜻을 합친 三興學校를 세워 구국영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천주교 계통의 敦義學校도 인수하여 敎育救國運動을 확장하였다. 이듬해 가을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등 3도 60여개교 5,000 여명의 학생이 참여한 학과 및 학술 연합운동회에서 돈의학교가 1등을 차지 할만큼 발전시켰다. 삼흥학교의 교과과정에는 목총과 나팔 북을 사용하면서 군사훈련도 받게하는 교련과목이 포함되었다. 구국교육운동에 투신한 안의사는 이들 학생이 훗날 조국독립의 전사가 되기를 기원하였을 것이다.

5. 百忍堂中有泰和
: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폭 33.2cm, 길이 137.4cm. 보물 제569-1호 姜信鍾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선혈들의 口傳 글귀로 화락한 집안을 만들기 위하여는 '忍耐'가 긴요하다는 뜻이다.

6. 庸工難用連抱奇材
: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폭 33.4cm, 길이 137.4cm. 보물 제56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가. 통감(通鑑)에 자사(子思)가 위왕에게 "열아름의 가래나무는(杞梓連抱) 썩은 부분이 있더라도(而有數尺之朽) 훌륭한 목수는 버리지 않는다(良工不棄)"라는 말에서 인용되었다, 큰인물이 아니면 뛰어난 인재를 기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7. 博學於文約之以禮
: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단속하라. 폭 33.3cm, 길이 137.9cm. 보물 제569-13호, 안의사기념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논어 顔淵 편에 "널리 공부하며 예법으로 몸을 단속하면(約之以禮) 빗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 아니냐"에서 나온 글귀이다. 박학과 예법을 강조한 안의사의 수신철학이 담긴 유묵으로 여겨진다. 안의사는 여순감옥에 투옥된지 3일만인 1909년 11월 6일에 訊問을 담당하는 검찰관에게 '이토죄악 15개' 조목과 함께 제시한 <대한국인 안응칠소회>에서 "무릇 文明이란 것은 동서양의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도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며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을 즐기면서 함께 태평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이 뜻을 부연하고 있다.

8.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
: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폭 30.6cm, 길이 133.6cm. 보물 제569-10호, 안의사의 자부가 鄭玉女가 소장하던 것을 안의사기념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論語에 나오는 글귀로 안의사의 옥중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희의 제주 유배시에 그린 <歲寒圖>에도 이 글귀가 인용되었다.

9. 恥惡依惡食者不足與議
: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 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폭 31cm, 길이 130.5cm. 보물 제 569-4호, 朴槿惠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가난하고 천한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안의사의 인생관이 반영된 글귀로 여겨진다. 論語에 "선비로써 道에 뜻을 두고 나쁜 옷 궂은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면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다"란 구절을 인용한 글귀이다.

10.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 폭 34.9cm, 길이 147.7cm. 보물 제569-2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어 있다. 선현들의 "하루의 독서는 천년의 보배요 백년간 물질만 탐하는 것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다"란 글귀와 유사하다. 안의사는 어려서 배웠을 이같은 글월을 촌철살인의 경구로 재구성하였다.

11.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폭31.7cm, 길이 135.4cm. 보물 제569-12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143일 동안 여순 옥중 생활을 한 안의사의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기상과 불굴의 호국애족의 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12. 年年歲歲花相以歲歲年年人不同
: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한다. 폭 41.3cm, 길이 109.6cm 보물 제569-3호, 민병도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세월이 가도 그냥 그대로 있건만 사람들은 세월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뜻으로 암울해가는 세태를 걱정하는 글귀이다.

13. 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
: 임 생각 천리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 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폭 31.5cm, 길이 96.3cm. 보물 제569-11호, 吳滿基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의사의 우국충절의 절시이다. 조선조 정철의 가사 <思美人曲>에서 임금에 대한 간절한 충절을 한지아비를 사모하는 여인의 마음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충성을 표현한 것과 방불한 기법이나 그보다도 월등한 애국열정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14.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폭 31.8cm, 길이 138.4cm. 보물 제569-9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장부의 기개가 충천하는 글귀로 안의사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이백의 五言絶句라고 전한다. 안의사는 자서전 <안응칠역사>에서 스스로 청소년 시절 가장 즐기던 것이 "첫째 친구와 의를 맺는 것이요, 둘째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요, 셋째 총을 들고 사냥하는 것이요, 넷째 준마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의리와 호방한 기개를 갖춘 尙武의 기상을 지녔다.


15.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폭 36cm, 길이 138.5cm. 보물 제569-5호, 원 김선량 목사가 소장하던 거스로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명시라도 할 수 있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은 韓靑日 3국이 각기 독립은 유지하면서 서로 연대 발전하자는 '아시아연대주의'로 집약할 수 있다. 3국이 연대 발전하여야 西勢東漸의 위기를 극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과 논리인 것이다. 안의사는 이같은 동양평화론에 따라 이토의 총살을 '동양평화를 적힌다'라는 정의의 응징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안의사는 '이토총살'이 조국의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전지역 내에 들어온 '적장공격'이라고 주장하였다. 대한의군참모중장겸 독립특파대장이었던 안의사는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를 총살 응징했다고 명백히 천명한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사형집행을 몇일 앞두고 취조관의 한 사람인 경희경 경시가 <동양평화론>을 완성하지 못할 것을 알고 안의사에게 <동양평화론>의 결론만이라도 써 달라고 청하자 안의사가 서슴치 않고 써준 것이라 한다.

16. 欲保東洋先改政界 時過失機追悔何及
: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계를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실기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보물 제569-21호,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지금 일본의 침략정책을 고치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후일 후회한들 소용없다는 안의사의 지론을 나타낸 글귀이다.

17. 孤莫孤於自恃
: 스스로 잘난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폭 74.9cm, 길이 39.7cm. 보물 제569-1호, 한중호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평소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 안의사의 겸손한 성품이 표현된 휘호이다.

18. 忍 耐
: 폭 72.1cm, 길이 26.8cm. 보물 제569-18호, 김성섭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이 안의사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을 것이다. 일찍 한학을 수학하면서 체득한 이 명구는 안의사가 소요로 번진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이후 구국계몽운동을 이어 망명후의 의병활동, 하얼빈 의거, 여순옥중투쟁, 순국의 순간까지 일관되게 관통한 엄한 계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 第一江山
: 폭 96.6cm, 길이 38.6cm. 보물 제569-14호, 원 김선량 목사 소장으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금수강산 삼천리 한반도에 대한 사랑과 조국애가 반영된 유묵이다.

20. 極 樂
: 폭 67cm, 길이 33.3cm. 보물 제569-19호, 원 강신종 소유로 안의사기념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신앙과 종교관이 깃들인 글귀이다.

21. 仁智堂
: 어질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의 당호. 폭 67cm, 길이 37.6cm. 보물 제569-17호, 임병천이 소장하고 있다.

22. 雲 齋
: 보물 제569-20호, 안의사기념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23. 靑草塘
: 보물 제569-15호, 민장식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24 天輿不受反受其殃耳
: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된다. 폭 31.7cm, 길이 135cm. 보물 제569-24호, 강윤호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는 이토가 스스로 하얼빈에 온 것을 하늘이 준 기회로 확신하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를 감행하였다.
 
 
※보물로 아직 지정되지 않은 유묵과 그 밖에 사본으로만 알려진 유묵

25. 志士仁人殺身成仁 : 지사와 어진 사람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폭 40cm, 길이 150c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묵은 중야태웅(中野泰雄)교수가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논어에 "志士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仁을 이룩한다"라는 孔子의 말을 인용한 글귀이다. 안의사는 유가의 4가지 덕목 중 가장 '義'를 중시하였지만 '仁.禮.智'에 관한 유묵도 남겼다. 이는 바로 成仁에 대한 안의사의 심회가 담긴 글귀이다.

26. 戒愼乎其所不賭 :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 폭 40cm, 길이 150cm. 일봄 정심사(靜心寺) 소장이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수감시 본원사(本願寺) 소속의 진전해순(津田海純) 승려가 감옥의 근무했던 인연으로 입수.전승된 것 같다. 중용(中庸)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데를 경계해서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을 두려워한다"는 구절에서 인용한 말이다. 하늘의 이치는 잠시도 쉬지않고 운행하기 때문에 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 들리지 않는 곳에서 조차 감히 소홀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고 도리어 경계해서 삼가야 된다는 뜻이다.


27. 天堂之福永遠之樂
: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이 유묵은 일본 동경 이생미술관 소장으로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는 19세 때 부친을 따라 천주교에 귀의 세례를 받은 후 32세 때 여순에서 순국할 때까지 일편단심 모든 것을 천주께 바치는 깊은 신앙으로 일관되었다. 천당의 존재와 신앙에 대해서 자서전 <안응칠역사>에서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서,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한번 정하고 다시 변동이 없는 것이요"라고 확신하고 있다. '천당영복' 의 말은 안의사가 순국 직전 모친과 부인, 홍신부 등에 보내는 유서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28. 釰山刀水慘雲難息
: 검산과 칼물에 처참한 구름조차 쉬기 어렵다. 폭 30cm, 길이 102cm. 침략전쟁을 일삼는 국제정세를 풍자한 글이다. 안의사의 자부 정옥녀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본이 전시되고 있다.

29. 喫蔬飮水藥在其中
: 나물 먹고 물 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다. 폭 26.5cm, 길이 133cm.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묵은 현재 안의사기념관에 사본이 전시되고 있다. 논어 편에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벼개삼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못한 부귀는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부귀를 부러워하지 않는 탈속의 심사다 표현된 글이다. 안의사의 온 생애를 보더라도 부귀는 한낱 뜬구름에 불과하였다.

30. 貧而無諂富而無驕
: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폭 32cm, 길이 137cm. 일본 덕부노화기념관에 소장되고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논어에 자공이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라도 공자에게 묻자 공자는 "옳다. 그러나 가난하면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고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대답한 대목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등보다도 예악의 도덕을 강조한 명구이다. 유묵 상편 왼쪽 여백에 안중근씨가 이 말을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31. 弱肉强食風塵時代
: 약한 자를 강한 자가 잡아먹는 풍진시대다. 일본에서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최서면이 확인,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을 보내와 전시되고 있다. 제국주의의 약소국 침략을 풍자한 글귀라 할 수 있다.

32. 白日莫虛度 靑春不再來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폭31cm, 길이 145cm. 정석수 소장,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성실한 인생철학을 나타낸 글귀로 해석된다.

33. 黃金百萬而不如一敎子
: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폭35cm, 길이 150cm. 일본에서 재일교포 김주억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명심보감에 "황금한 궤짝이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과 같다. 안의사의 문장표현의 뛰어남을 엿보이는 글귀이다.

34. 言語無非菩薩 手段擧皆虎狼
: 말은 보살 아닌 것이 없건마는 하는 짓은 모두가 사납고 간특하다. 일본에서 최서면이 확인, 안의사기념관에 사진을 보내와 전시되고 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위협하여 러.일전쟁 이래 체결한 한일의정서를 비롯 을사오조약, 정미칠조약 등 일련의 외교적 침략행위가 다 겉으로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인민의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표방하면서도 내용은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자행된 침략행위였음을 비판하고 있는 글귀로 생각된다.

35. 年年點檢人間事 惟有東風不世情
: 해마다 세상일 헤아려보니 다만 동쪽바람만이 세태를 따르지 않도다. 조선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일본인의 후손이 간직하고 있는 것을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조국이 위태로워가는데 동풍이 불어 친일파만 늘어만 가는 세정을 한탄한 글귀로 여겨진다.

36. 日通靑話公
: 청나라말을 할 줄 아는 일본인 통역관. 폭 37cm, 길이 41.1cm. 소재가 불명한 이 유묵은 오른쪽에 '증청전선생'이라고 기입되었다.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37.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盈必昃兮 不覺其兆
: 해가뜨면 이슬이 사라지나니 천지의 이치에 부합되도다 해가 차면 반드시 기우나니 그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폭47cm, 길이 143cm. 안중근의사순모회 황명수 이사가 일본에서 확인하고,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우주순행의 원리를 비유하여 침략전쟁을 감행한 일제의 패망을 예언한 풍자시이다.

38. 臥病人事絶 嗟君萬里行 河橋不相送 江樹遠含情
: 나는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는 만리 먼길 떠나가는가. 다릿목에 같이나가 보내길 없고 강언덕 나무숲에 정만 어렸도다. 일본에서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을 보내와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국 唐나라 시인 宋之問의 <別杜審言>에서 인용한 구절로 宋之問과 두보의 종조부인 杜審言간의 우정과 이별의 심정을 5언절구로 표현하였다. 여순옥중의 안의사의 심회와 일치하여 휘호하였을 것이다.

39. 山不高而秀麗 水不深而證淸 地不廣而平坦 林不大而茂盛
: 산은 높지 않으나 수려하고 물은 깊지않으나 청결하고 땅은 넓지 않으나 평탄하고 숲은 크지 않으나 무성하다. 폭 34.5cm, 길이 136cm. 공창교가 재일교포로부터 인수, 송장하고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금수강산 조국을 6언절구로 읊은 시이다.

40. 貧輿賤人之所堊者也
: 가난하도 천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폭 42cm, 길이 120cm 가량. 안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 소장으로 사진본이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빈부귀천에 대한 올바른 생활철학이 간결하게 표현된 유묵이다. 논어에 "부귀는 누구나 탐내는 것이나 올바른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며 사람마다 가난과 천함은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 道로 얻음이 아니더라도 버리지 말고 감수하라"라고 한 글귀에서 인용된 것이나 간결한 재구성의 표현이 돋보인다.

41. 敬 天
: 폭 67cm, 길이 34.5cm. 부산 자비사 박삼중 주지가 일본에서 확인, 국내에 소개한 것이다. 경전의 '경천애인'에서 인용한 것으로 일제의 침략을 질타하는 뜻이 담겼다.

42. 百世淸風
: 국내에 사진본이 소개되고 있다. 안의사 고향에도 암각되어 어릴 때도 보았던 '백세청풍'이란 문구는 정의로운 세계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안의사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43. 自愛室
: "스스로를 아끼는 집"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진본만이 유전되어 소재가 불분명하다.

44. 一勤天下無難事
: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것이 없다. 안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자 <만주일일신문>에 사진본으로 보도되어 안의사 유묵으로는 최초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원본의 전래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안의사의 성실한 인생관이 투영된 휘호이고 '백민당중유태화'와 짝을 이루는 글귀라고 할 수 있다.

45. 人類社會代表重任
: 인류사회의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 안의사의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미완의 <동양평화론>의 필사본을 간직한 칠조청미(七條淸美)의 딸 앨범 속에 사진본이 전하는 휘호이다. 안의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46. 不仁者不可以久處約
: 어질지 못한 자는 궁핍한 곳에서 오래 못 견딘다. 폭40cm, 길이 150cm. 일본 정심사(淨心寺) 소장이다. 논어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안의사의 어진 성품과 인내심을 엿보이게 하는 휘호로 평가된다.

47. 敏而好學不恥下問
: 민첩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폭 40cm, 길이 150cm. 일본 정심사 소장이다. 논어에서 인용하였다. 상무의 기질을 갖은 안의사이지만 학문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글귀이다.

48. 日韓交誼善作昭介
: 한 일 간의 교의는 소개가 잘 되어야 한다. 안의사의 하얼빈의거 직후에서부터 여순순국시까지 모든 통역을 전담하다시피 한 통역에게 써준 휘호임을 알 수 있다. 원목(園木)이 소장하였던 안의사관련 신문스크랩철 및 관련사진과 함께 그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 국제학국연구원장 최서면이 확인, 보도되었다. 원본의 전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49. 通情明白光照世界
: 통정을 명백히 하면 세계를 밝게 빛일 것이다. <여순안주일일신문> 1910년 3월 27일에 사진본으로 게재, 세상에 소개되었다. 원본의 전래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50. 澹泊明志寧靜致遠
: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된다. 조선일보사 조사부에 사진본이 소장되고 있다. 유묵소재와 진부여부를 확인중이다.

51. 臨敵先進爲將義務
: 적을 맞아 먼저 전진하는 것이 장수의 의무이다. 명주천에 휘호된 이 유묵은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군지휘관의 의무를 간결하게 표현한 글귀이다.

52. 臨水羨魚不如退結網
: 물에 다달아 고기를 부러워함은 물러가서 그물을 뜨니만 못하다. 구관동도독부법원 율사집안에서 최서면이 확인, 사진본이 공개된 것이다. 안의사의 '실천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글귀다. 이 글귀가 휘호된 사실은 계봉우의 <만고의 시 안즁근젼>에서도 확인된다.

53. 長歎一聲 先弔日本
: 장탄 일성으로 먼저 일본의 명망을 조상한다. 일본 구대만총독부 관리를 역임한 집안에 전래하는 유묵으로 근래 김광만이 확인, 국내에 사진본이 소개된 것이다. 진부 여부와 전래과정 등을 확인중이다. 폭 40cm, 길이 230cm 가랭의 명주천에 내용도 특이하게 '일본 멸망을 조상'하는 뜻을 담고 있다.

54. 獨 立 : 폭 63cm, 길이 33cm. 일본에 소재, 국내에 소개된 것이다. 상세한 것은 확인중이다. 안의사는 구국운동 중 동지 11인과 함께 '단지동맹'을 통해 단지동지회를 결성할 때에도 태극기에 '大韓獨立'이라 혈서 하였었다. 안의사는 한국의 '獨立'과 동양의 '平和'를 위해 헌신 순국하였다.



기사입력: 2010/01/09 [23:50]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읽기 10/01/10 [00:26] 수정 삭제
  安重根 義士 銘言 遺墨 18點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忍 耐(인내)
참고 견딘다는 안의사 평생의 좌우명.

天堂之福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황금백만량불여일교자)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貧而無諂富而無驕(빈이무첨,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치오의오식자부족여식)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孤莫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스스로 잘난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博學於文約之以禮(박학어문약지이례)
글 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 단속하라.

人無遠慮難成大業(인무원여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白日莫虛渡靑春不再來(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년연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自 愛 寶(자애보)
스스로를 보배처럼 사랑하라.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와 안위를 걱정하고 애 태운다.


見利思義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사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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