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호칭 장군이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
<주장> 장군이란 호칭 통용되면 국제적 해석이 달라진다
 
정광일


▲   부천 안중근 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장군 동상  © 단지12 닷컴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기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안중근 100주년에 몇 가지 재정리해야 할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서 급선무가 호칭문제입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안중근 이름 뒤에 '의사'라는 호칭을 붙혀 왔습니다.
그러나 '의사'라는 것은 민족적인 용어이고 내부적인 '우리끼리' 존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
'장군'이라는 호칭은
국제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장군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이전부터 무장항일운동에 나선 독립군이었습니다.
 
1907년 이미 3차례 연해주에서 국내진공작전을 지휘했습니다.
2번 승전이었고, 3번째는 패전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 때 안중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지위로 항일무력 전쟁을 전개 한 것입니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만 사살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생사를 넘나든 조직적인 무장항일독립군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부대 이름이 '대한의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의사'라는 호칭을 붙히면 딱 한 건,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제거한 것에 안중근의 활동이 협소해집니다.

 
'의사'라는 호칭은 순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순교를 의미합니다.
장군이라는 호칭에는 독립전쟁, 독립군, 군인이라는 의미가 적용됩니다.
 
의사라는 것과 장군이라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국제법상 안중근의 하얼빈 작전의 해석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장군이란 용어가 국제적이라는 것에는 100년전 안중근의 하얼빈 투쟁을 국제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1910년 2월7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안중근 재판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서도 의사와 장군에 따라 그 해석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우리 국민 일부에서는 '의사'가 '장군' 보다 훨씬 더 거룩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도 안중근 호칭에 대해 ''장군' 보다는 '의사'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심지어는 '선생'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이 될 수 없습니다. 아시아의 영웅, 나아가서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적 평화주의자로 세계사에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의사'는 민족사에는 영웅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로 세계사에 남기가 어렵습니다.
당장 일본에서는 안중근이 '의사'가 아니고 '장군'도 아니고 '암살자'로 규정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안중근에 의해 숨진 이등박문이 일본의 영웅으로 일본 역사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의 호칭이 장군으로 통하는 날 이 모든 것이 한번에 해결됩니다.
우리가 안중근 장군 호칭을 외면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일본은 안중근 홍칭이 장군으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안중근은 의사를 초월한 장군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중근은 일제법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군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포로로 대접하라고 하면서 국제법에 따라 포로를 포로 답게 대접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일제 법정은 그 같은 주장을 묵살했습니다.
 
장군이라는 호칭보다 의사라는 호칭을 고집하는 것은 일본 법정의 일본 검찰, 일본사밥부의 논리와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의사라는 호칭보다 장군이라고 부르자는 주장은 100년 전 안중근의 주장과 똑 같은 것입니다.
100년전 일본사법부의 논리에 동의해야 합니까? 아니면 100년 안중근 주장에 동의해야 합니까?
 
안중근은 자신이 군인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분이 그토록 원했던 민간인 신분이 아닌 독립군 신분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 보다는 장군이 맞다는 것입니다.

 
이제 1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 토록 안중근이 군인이고자 했던 지위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안중근에게 이렇게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 후손들이 당신에게 의사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독립군, 독립전쟁에 나선 장군이라고 부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나를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 불러달라고 하실 것이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장군'이라는 호칭이 '의사'라는 호칭 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하얼빈 의거는 '하얼빈 작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얼빈 전투, 하얼빈 특공작전이 되는 것입니다.

안중근 장군이 순국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라고 하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군인이고자 했으면 순국직전 마지막 쓴 글이 "위국헌신 군인본분"이겠습니까?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참 뜻을 안다면 안중근 장군이 되는 것입니다.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작전은 혼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엔 다수가 직간접으로 참여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전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덕순, 유동하,,,  그리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하얼빈 작전 본부도 있었습니다.
 
안중근 장군과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구별됩니다.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 작전 이전 부터 무장 항일투쟁, 즉 수 백명의 대원을 거닐고
일본군과 싸운 경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안중근 장군이 다른 점 입니다. 그래서 안중근은 장군이 되고 윤봉길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안중근을 '렬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을 장군이라고 합니다. 참고해야 할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결코 의사가 장군 보다 더 거룩한 존칭이 아니라는 것을 깨쳐야 합니다.

장군은 장군이고 의사는 의사이지만 안중근 스스로 항일독립전쟁에 나선 독립군(군인) 이라고 했던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중근의 재발견, 이것은 호칭,존칭부터 바꿔야 합니다. 2010년,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기에 우리가 할 일 중에 하나가 안중근이 그 토록 원했던 독립군으로 군인으로 신분을 복원해 주어야 합니다.
 
<정광일 /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대표>

기사입력: 2009/12/25 [20:49]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안중근 장군 텀즈 17/03/23 [16:37] 수정 삭제
  우리 국민들 조차 자꾸 안중근을 의사라고 부르고 있으니 모두들 은연 중에 그를 민간인 신분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고, (더욱이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간인이 한 나라의 대신에게 총격을 가했으니 그게 바로 테러요, 가해자는 테러리스트"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빌미를 우리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론의 여지없이,
안중근은 대한의군의 장군이며, 한 나라의 군인으로서 적의 괴수를 사살한 것이므로
안중근 장군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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