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동상, 국회 입성까지
하얼빈 역-하얼빈 공원-심양서 1박 -여순법정서 진혼제 후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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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16일 하얼빈 시내에 세워진 동상이 11일 만에 철거된 후 지난 3년 8개월 동안 유로백화점 지하 사무실에 임시 보존됐다. 그 기간 동안에도 하얼빈을 찾은 한국인들이 안중근 장군 동상을 찾아왔다. 사진은 한국서 온 학생들이다.   ©단지12 닷컴1

 
▲  광복절인 8월 15일, 안중근 하얼빈 동상은 3년 8개월 동안 머물던 하얼빈 중앙대가 백화점 지하에서 어렵게 지상으로 올라왔다.  높이 3m, 무게 1.5톤의 동상을 지하에서 끌어올리는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중국인 전문가들이 대거 동원, 인력으로 끌어 올렸다.  ©단지12 닷컴2
▲  동상을 실은 트럭이 역사의 현장 하얼빈 역에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단지12 닷컴3
▲   하얼빈 역 프렛 홈 '그 때 그 자리'에 안중근 장군 영정과 동상이 사진이 함께 섰다.  안중근 장군의 정신을 동상에 담는 의식이다.  ©단지12 닷컴4
▲  이른 아침 하얼빈 역은 승객들로 엄청 붐볐다.  안중근 장근 영정이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났다.    ©단지12 닷컴
 
▲  하얼빈 역 프렛홈을 나온 안중근 장군 동상 수송 팀은 하얼빈 앞에서 100년전 이등박문이 탄 기차를 애타게 기다렸던 청년안중근을  심정을 헤아렸다.  ©단지12 닷컴5
▲  일행은 다시 안중근 장군 영정을 들고 하얼빈 공원도 한바퀴 돌았다. 이곳 하얼빈 공원은 안중근이 거사 직전 거닐었고, 최후 유언에서 이곳에 자신의 시신을 조국독립 이전까지 임시로 묻어달라고 했던 곳이다.   ©단지12 닷컴6
▲   하얼빈 공원 안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장군 유묵비석 앞에서 100년 전 안중근의 모습을 기억했다.  ©단지12 닷컴
▲   동상을 실은 트럭은 하얼빈에서 심양으로 향했다. 그곳것에서 1박 하기로 했다.  ©단지12 닷컴7
▲  8월 15일 오전에 하얼빈을 출발한 동상은 저녁 8시가 넘어서 심양 시내 한인타운에 도착했다. 심양은 독립운동의 본거지 중의 하나였던 만주봉천이다. 동상이 심양 한인타운에 도착하자 심양 한인회, 심양대한체육회, 심양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원생들이 안중근 장군 동상을 환영했다. 사진은 한인들의 밀집 거주지역인 서탑이다. ©단지12 닷컴8
▲  동상은 16일 오후 여순법정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곳은 100년 전 건물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역사전시관으로 활동되고 있다. 안중근 장군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단지12 닷컴
▲   여순법정 앞 마당서 간단한 노제를 올렸다.  안중근청년아카데미 김진원 지도위원이 노제를 주관했다.   ©단지12 닷컴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가 술 한잔 올리고 제배를 했다.  하얼빈서 출발한 동상은 1,100km 달려 1909년 2월 14일 안중근 에게 사형을 선도했던 법정에서 간단한 노제를 치루게 됐다.  ©단지12 닷컴9
▲  여순법정을 관리하는 조선족 동포 정춘매씨도 안중근 장군에게 정성스럽게 제주를 올리고 절을 했다.  안중근 장군 동상은 이곳에서 12일 동안 머물기로 했다.   ©단지12 닷컴
▲  8월 27일 오후, 여순벙정 마당에서 진혼제가 치뤄졌다. 여순법정에 도착한지 12일 만이다. 전주대학교 고혜선 교수가 서울에서 날아와 진혼무를 담당했다.  이것은 안중근 장군이 1910년 재판을 받기위해 인근 여순감옥에서 마차를 타고 이동에 내린 곳이다.    ©단지12 닷컴10
 
▲  고혜선 교수의 진혼무는 법정 안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안중근 장군에게 사형이 내려졌었다. 이날 진혼무는 100년 전 재판이 부당했다는 안중근의 절규를 달래는 의미를 갖는다. 안중근 장군 동상 사진이 놓인 곳이 1910년 2월 14일 안중근이 앉았던 그  당시 피고석이다.   ©단지12 닷컴11

▲  대련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대인훼리호을 탄 동상이 인천항에 도착해 9월 1일 귀국환영식을 갖었다. 안중근 탄신 130주년이 되는 하루 전이다.   ©단지12 닷컴
▲  인천 본부세관에서 오전 11시에 간단하게 준비된 안중근 장군 100년 만에 귀국 환영행사에는 육군 군악대가 지원했다. 안중근 동상사진은 이승희 전 국회의원(안중근청년아카데미 지도위원장)이 들고 영정사진은 이진학 회장(동상건립위원회)이 들었다.     ©단지12 닷컴12
 
▲   서울로 가기 위한 동상은 탑재차량에 실렸다.   이곳은 인청항 3문이다. ©단지12 닷컴13
 
▲  인천항 제 3문을 출발한 안중근 장군 동상은  서대문구 소재 독립문을 지나 효창공원에 도착했다. 효창 공원에는 안중근 장군 허묘가 있다. 안중근 장군 동상은 본래 이곳에서 50여일 정도 조용히 머물 계획을 가졌으나 안중근 장군이 편히 쉴 곳이 못됐다. 안중근청년아카데미 회원들이 안중근 허묘 앞에 영정과 동상사진을 놓고 간단한 귀국의식을 치뤘다. 효창공원 입구까지 도착한 동상은 이날 저녁 제 3의 장소로 성당과 교회, 사찰 등 종교단체를 선택해 1차적으로 효창공원과 가깝고 여의도 국회가 가까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원불교 회관 1층 원음방송 현관에 보존됐다. 동상은 이곳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단지12 닷컴14

▲  안중근 장군 동상은 국회사무처의 지원으로 3일 저녁 7시, 여의도 국회 안으로 이동 하루 밤을 누운채로 보내고 국회내 동상임시전시 준비에 들어갔다.   ©단지12 닷컴
▲  4일 안중근 장군 동상은 국회 안에서 임시전시를 하기로 하고 오후 3시부터 포장해체작업을 시작했다. 국회사무처 박계동 총장이 작업 현장을 직접 방문해 안중근 장군 동상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안중근 장군 동상을 국회 의원회관 로비 중앙홀에 전시하는 문제를 전격 제안했다. 그러나 동상의 크기와 이동장비 등의 문제로 동상전시 장소로 헌정기념관 앞마당이 최종 결정됐다.    ©단지12 닷컴15
▲  안증근 장군 동상은 이날 오후 4시 43분에 헌정기념관 앞뜰에 태극기를 두르고 우뚝 섰다.    ©단지12 닷컴16
▲  안중근 장군 동상은 본래 서울 도착후 50여일 포장된 상태로 누워있을 계획이었으나  국회사무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국회 안에서 서있게 됐다.  이날 임시 제막식에는 많은 언론사가 현장에서 취재했다. ©단지12 닷컴
 
 
▲  헌정기념관 앞 뜰에 동상이 자리를 잡고 선 직후  부근을 지나던 국회소속 직원들이 동상 앞에서 예의를 표했다. 첫번째 참배로 기록된다.    ©단지12 닷컴
▲   박계동 국회사무총장이 보낸 '안중근 장군 100년 만에 귀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과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이승희 전 의원이 보낸 화환이 동상 좌우에 놓였다.   ©단지12 닷컴17
▲  국회사무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안중근 장군 동상이 예상 보다 50여일 먼저 공개는  행운을 얻게 되면서 서울 남산에 있는 기존의 안중근 동상(과 비교할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지게 됐다. ©단지12 닷컴
안중근장군 하얼빈 동상 계획 변경 내용
 
<원안> 동상 서울 도착 후, 효창공원에 50일간 포장상태 보존 후 10.26 동상제막
<변경> 동상 서울 도착 후, 국회 안에서 임시제막 동상전시 후 10.26 동상제막

기사입력: 2009/09/06 [00:12]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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