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안중근 동상'과 '하얼빈서 온 안중근 동상'
<안중근 동상 비교> 안중근 장군 기상과 영웅적 모습찾기
 
정광일
▲  중국 하얼빈서 귀국해 국회 안에 임시로 세워진 안중근 장군 동상(하얼빈 동상)과 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오른쪽) © 단지12 닷컴
 
 
▲  각기 다른 안중근 사진 안중근 장군의 얼굴로 전해지고 있는 사진들. 이 중 넥타이 차림의 사진은 하얼빈 거사 전 사진이고, 나머지는 수감 중에 일제에 의해 찍힌 사진들이다.  한복차림은 1910년 3월 26일  순국직전 사진이다.  국가보훈처는 최근 하얼빈에서 온 안중근 동상에 대해 사진속 얼굴과 닮지 않았다고 작품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단지12 닷컴
 
남산 안중근 기념관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 세워진 '안중근 장군 동상'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의사 동상은 1974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동상은 대표적인 친일작가로 알려진 김경승의 작품으로 그 동안 친일논란에 휘말려 왔다.
남산 안중근 동상은 문화재급으로 지정된 것으로 국가보훈처로 부터 대표적인 안중근 의사 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9월 4일 국회내 헌정기념관 앞마당에 임시로 세워져 일반인에게 전시공개되고 있는 안중근 장군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중국 하얼빈 시 중앙대가 번화가에 세워졌다가 11일 만에 중국 정부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후 3년 8개월 동안 재중사업가가 운영하는 백화점 지하사무실에 보관됐다가 2009년 9월 1일 귀국한 '고독한 사연'을 간직한 동상으로 대한민국 현역군인( 대령)이 설계디자인하고 안중근 장군의 의거현장인 중국 하얼빈에서 하얼빈 공과대학 양세창 교수에 의해 조각됐다.

 
하얼빈 안중근 동상은 지난 3년 8개월 동안 국내언론을 통해 수 차 소개된 것으로 현재도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장권에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구에도 대형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국내로 반입된 하얼빈 동상에 대해 작품성, 예술성 등 검증 안된 동상이기 때문에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보훈처는 하얼빈 동상의 얼굴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 속 얼굴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검증이 안된 동상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얼빈 동상의 국내반입을 추진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는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진 '안중근 사진'은 안 의사가 하얼빈 의거 후 일본헌병들에게 체포돼 쇠사슬에 묶인채 흉악한 살인범으로 묘사하기 위해 일제가 불순한 의도로 찍은 사진들이라면서 쇠사슬에 묶여 찍힌 얼굴 사진과 동상 얼굴 모습의 동일여부에 비중을 두고 동상의 작품성 예술성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쇠사슬에 묶인 얼굴 사진으로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모습을 작품화 한다는 무리라는 것이다.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세워져 있는 남산 동상과 하얼빈에서 귀국해 국회에 임시로 세워진 하얼빈 동상의 모습은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사진 속의 '안중근 옷'을 기준으로 볼 때 두 동상은 큰 차이가 있다. 남산 동상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 거사 이전의 사진 속 옷을 동상제작에 반영했고, 하얼빈 동상은 거사 이후의 사진 속 옷을 동상제작에 반영한 셈이다.

안중근 사진 중 넥타이을 멘 모습은 하얼빈 의거 전이다. 남산의 안중근 동상에 넥타이가 등장한다는 것은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전의 안중근 사진을 참고했다는 것을 쉽게 알수있다. 대표적인 친일작가로 알려진 김경승은 왜 안중근 장군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이전의 넥타이를 멘 안중근 사진을 동상제작에 활용했을까? 

우선 남산동상은 안 의사의 모습이 단정하다. 넥타이를 메고 양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코트를 입었다. 전체적인 의상이 파티복 처럼 고급스럽다. 얼굴 표정 역시 귀공자에 가깝다.
 
그러나 국회에 전시되고 있는 하얼빈 동상은 의상이 전투복이다. 하얼빈 의거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재현했다. 옷의 단추 하나가  없다. 단추가 하나 없는 것은 안중근 장군이 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된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얼빈 동상 얼굴표정은 심각하다. 시선도 매섭고 힘이 들어가 있다. 목이 약간 옆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한 곳을 분명하게 응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역동적인 자세다.

남산 동상의 얼굴 표정은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을 갖는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도 감돈다. 시선는 정면을 보고 있지만 다정한 느낌을 갖는다.

상대적으로 하얼빈 남산 동상에 비해 인자한 느낌이다. 하얼빈 동상이 전투적인 느낌이 있다면 남산 동상은 인자한 느낌을 준다.
 
하얼빈동상 오른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하반신 자세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남산 동상의 오른 손은 태극기 깃대를 쥐고 서 있는 정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남산 안중근 동상은 전체적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등박문을 사살한 용맹스런 항일 무력투쟁에 나선 독립운동가 안중근 장군 이미지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두 동상 모두 의상을 제외하고는 사진 속 얼굴과 꼭 닮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물론 동상은 반드시 실제 사진과 닮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   두 동상의 옆 모습. 분위기는 다르지만 크기는 비숫하다(3m)  ©단지12 닷컴
안중근청년아카데미는 '하얼빈 안중근 동상' 국내 반입을 '안중근 장군 100년 만에 귀국'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에서 만들어진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동상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려져 100년 전 총성이 울린 의거의 현장 하얼빈 역과  안중근 장군이 유언을 통해 자신의 시신을 묻어달라고 했던 하얼빈 공원을 거쳐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여순감옥으로 이송된 경로를 따라 여순재판소에 16일도착해 14일 동안 임시보존 했다.
 
특히 하얼빈 동상은 귀국에 앞서 당시 안중근 장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에서 100년전 재판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진혼제 의식을 갖고 인천항을 통해 9월 1일 귀국 한 뒤, 안중근 장군 허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에사 100년 만에 귀국 의식을 상징하는 귀국의식을 마치고 9월 3일 국회사무처의 지원을 받아 하루 뒤인 4일, 민의의 전당 국회 안 헌정기념관 앞 뜰에 임시로 세우고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정광일 /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대표>

기사입력: 2009/09/05 [11:53]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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