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동상 12개 세울 참 입니다"
<인터뷰>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위원회 이진학 회장
 
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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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는 것은 단순한 동상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동상 건립운동을 통해 안중근 의사를 재발견하는 안중근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오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일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서울에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안중근 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안중근의사 동상건립위원회 이진학 회장은 안중근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계기로 안중근 재발견 운동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2006년부터 중국 하얼빈시 백화점가인 중앙대가에 진출해 한국상품 전문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학 회장이 안중근 의사를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 하얼빈에 한국상품 전문 백화점을 오픈하기 위해 뛰어다디던 중에 군에 있는 친구를 만나 의기투합했습니다. 육사를 졸업하고 군에 있는  그 친구는 육사생도 시절 교정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면서 생도생활를 했다며 안중근 정신은 대한민국 군인정신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하얼빈이라는 도시이름이 한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안중근 의사 동상세우기 작전은 곧 바로 실행단계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하얼빈에 진출하기 이전에도 한국의 고위층들이 하얼빈시 정부에 안중근의사 동상건립을 여러차례 건의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한결 같이 외국인 동상을 실외에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하얼빈에 동상 세우기가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도모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쉬울 것이란 판단아래 저는 조용하게 백화점 개점 준비와 함께 동상제작일을 착수했습니다.
 
2005년 한 해동안 서울과 하얼빈을 수차례 오가면서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찾아 필요한 자료를 구하고  안중근의사 숭모회 등 안중근 의사 관련 단체나 연구가들을 찾아 동상제작에 따른 고증과 자문을 받아 동상을 제작해 2006년 1월 16일 백화점 개업식날 백화점 옆 간이 공원에 동상을 세웠습니다.
 
이진학 회장이 동상을 세운 장소는 일명 러시아 거리로 차가 없는 도보 쇼핑가다. 서울로 치면 명동거리에 해당된다. 6개의 대형 백화점이 밀집해 있는 하얼빈 최고의 번화가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운 것이다.
이날 제막식에는 안중근의사 동상제작에 관심을 갖고 여러차례 자문을 해준 서울의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관장하는 안중근의사 숭모회 김광시 사무처장과 박귀언 이사가 직접 참석했다.

"동상건립 추진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사전에 계획이 차질이 올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동상제작에서 부터 제막식 일정이 공개되기 까지 5-6명 정도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상제막식 하는 날 아침에야 하얼빈 유학생과 동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중국 당국에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고 세운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일단 세우고 사후에 허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중국 당국은 동상을 허가 할 수 없다면서 동상을 실내로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중국측인사들에게 중국도 좋아하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왜 안되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그랬더니 중국 정부 인사가 하는 말이 "모택동 동상을 서울의 중심가에 세울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 말에 할 말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인 동상을 실외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입장이었고 결국 11일 만에 동상을 백화점 안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진학 회장은  백화점내 넓은 공간에 자신의 집무실을 만들고 그 곳에 안중근의사 동상을 정성스럽게 보존했다. 그 후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찾아와 참배도 하고, 쇼핑나온 중국인들도 사무실에 임시로 모셔진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참배를 했다. 지난 3년 간 2천여명이 다녀갔고 일부는 방명록에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글과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 동상을 백화점 내 사무실로 옮긴 이후 중국 정부에 동상을 밖에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정식으로 허가신청을 접수시키고 나름대로 인맥을 동원해 지난 3년 동안 중국정부에 건의했지만 답변은 한결 같이 '외국인 동상 실외건립 불가'였습니다.
중국측 입장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언제까지 밖에 있어야 할 동상을 사무실  안에 그대로 보존할 수도 없었습니다.
때마침 제가 지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서 중국, 미국, 호주, 등 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안중근 동상건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에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서울로 옮겨 서울의 역동적인 공간에 동상을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오는 15일 하얼빈을 출발하는 안중근 동상은 하얼빈 공원과 하얼빈 역을 거쳐 100년 전 안 의사가 일본 헌병에 의해 쇠사실에 묶여 압송된 루트인 하얼빈-장춘-심양-대련을 거쳐 여순감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여순에는 당시 감옥이 그대로 역사교육 현장으로 보존돼 있고, 여순감옥 인근에 당시 관동도독부지방법원도 그대로 보존돼있다. 
하얼빈에서 여순으로 1,100Km 를 이동한 동상은 안중근 의사가 14일 동안 속전속결로 부당한 재판을 받았던 당시 법원에 도착해 14일 동안 임시보존 된 후 8월 말 여순감옥을 거쳐 대련항에서 인천행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른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14일 동안 재판소에 머문 것에 대해 이진학 회장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안중근 의사는  14일 간의 재판과정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폭로했고, 자신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침략국의 적장을 사살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거사 동기를 설파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법정투쟁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법정투쟁 현장에서 그 정신을 동상에 담는다는 의미다. 

 " 9월 초에 인천에 도착한 동상은 천안독립기념관이나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 서울 효창원에 50여일 간 임시보존 한 뒤 10월 26일 제막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안중근 의사 동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하는 장소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보다는 안중근 의사 조국인 한국에서는 동상 세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관계부처의 규정도 무시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동상을 서울로 모셔온 이후에 서울시등 관련 부처와 이 문제를 상의하려고 합니다. 중국 하얼빈 보다는 서울이 더 쉽지 않겠습니까?"

 
중국 정부가 안중근 동상의 한국이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물음에 이진학 회장은 하얼빈 시당국은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 백화점 밖 쇼핑거리에 세운 동상을 11일 만에 백화점 안으로 옮긴 후 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동상을 다시 세우게 해달라고 여러체널로 중국 측에 로비를 했거든요. 그런데 곤란하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동상을 한국으로 옮긴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서는 더 이상 저에게 시달림을 안당한다는 것이지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골치아픈 '민원꺼리'가 하나 없어지는 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 측에서는 동상의 서울 이전을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얼빈 시에서는 안중근 의사 동상의 한국 이전에 대해 선택 잘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초대형 동상을 하얼빈에 세우려고 했으니 어쩌면 저의 시도가 무모한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얼빈에 안중근의사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저의 의지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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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동상겁립추진위는 이미 12개의 동상을 향후 10년간 세운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이진학 회장은 이 동상건립위원회 회장이다.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운동을 위해 이미 중국, 미국, 일본, 호주 영국에 해외조직을 갖추고 있다. 안중근 운동의 국제화 기틀을 잡고 있는 셈이다.
 
" 향후 10년 간 12개 동상을 세운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미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인 내년에 세울 두 번째 동상을 제작 의뢰해 놓고 있습니다.
중국 하얼빈에서 제작된 동상은 역사의 현장이라는 상징성과 역사성을 갖게 됩니다.
12개의 동상은 안중근 의사를 포함해 12분이 단지회를 만들고 12분이 혈서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쓰신 것을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서울 뿐 만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각 지역에도 동상을 세운 다는 뜻이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중근 의사의 고향인 황해도 지역이나 남북교류의 현장인 개성공단에도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고 싶습니다.안중근 운동은 통일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이진학 회장이 선호하는 동상제막 장소는 일순위가 서울역 앞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의거를 했다는 상징성을 서울역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취지다. 그 다음은 광화문 일원이나 젊음의 거리인 신촌대학가이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 우리나라 동상은 대부분 역동적인 공간이 아닌 산 속이나 공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상건립 취지가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자는 것인데 사람들이 많지 않는 공원의 숲 속에 동상을 세우는 것은 동상건립 취지에 맞지않다고 봅니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 처럼 역동적인 공간에 동상이 세워져야 동상 주인공의 정신을 시대정신화 하지 않겠습니까?"

 
▲  안중근의사 동상 이동시 차량에 부착될 안내표시판   © 단지12 닷컴

이진학 회장은 이번 하얼빈 동상을 서울로 모셔오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100년의 귀국'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 역과 여순 재판소와 여순감옥을 경유하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유해와 비슷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동상은 대한민국 현역 군인이 설계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얼빈 빙등축제(어름조각축제) 창시자인 하얼빈 공대 조각전문가 양세창교수가 조각한 것으로 높이 3m, 무게 1.5톤의 청동상으로 안중근 의사의 청년기상이 풍긴다. 이 동상은 3년 넘게 조명불 아래 있다가 광복절 64주년인 오는 8월 15일 오전 햇볕 아래로 나와 안중근 의사가 거사 직전 거닐었던 하얼빈 공원과 하얼빈역에서 15일 여정의 귀국길에 오른다.

기사입력: 2009/08/07 [13:30]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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