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소설안중근, '고독한 영웅' 출판기념회
'소설안중근'출판 기획자의 변 & 저자의 변, 축하 메시지
 
단지12 닷컴
  <저자 안동일 소개>

 서울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미국 뉴저지 페얼리 디킨슨 대학 연구교수를 지냈다.
1982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미주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 동포 언론계서 활동 했으며 서울 민주일보 주미특파원을 지냈다.

94년 한국에 일시 귀국, 서울 불교방송에서 시사프로 ‘천수천안’을 진행 했으며 96년 말 다시 뉴욕에 돌아가 동포 방송, 라디오 서울의 시사프로 와 종합뉴스를 7년 넘게 진행 해오다 2003년 7월  영구귀국 했다.
귀국 후 국무총리실 전문위원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마천동 남한산성 산자락 우거에서 창작과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방북 취재 경험을 토대로 한 방북취재기 ‘갈라진 45년, 가서 본 반쪽’(92년 돌베개), 통일염원 소설 ‘해빙’(93년,돌베개)과 고구려 역사와 만주의 문제를 다룬 역사 소설 ‘영웅의 약속’(97년, 미래사), 고구려 시대 장수왕과 여진족 장군의 우정을 다룬 역사 소설 ‘구루의 물길’ (2005년, 파인데코). 민족혼의 상징 임진왜란 승전비의 환수를 다룬 정문부장군의 ‘북관대첩비’ (2006년, 브레이크미디어) 등이 있다. 이중 해빙은 96년 SBS 창사특집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드라마화 되기도 했다.    연락처     dongilahn@hotmail.com
 
 
 
<소설 안중근 출판 기획자의 변> 
  

2009년 올 해는 안중근 장군 하얼빈 작전 100주년(10월 26일) 과 순국 99주기(3월 26일)가 되는 해입니다. 영웅적인 안중근장군의 삶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각 유관단체들이 마라톤, 웅변대회, 뮤지컬, 오페라, 학술대회, 서예전, 자료전시 등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마련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100년'을 기점으로 우리사회에서 안중근장군의 민족정신, 평화정신을 재조명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중근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장군은 민족정기의 표상으로서 남북한에서 각각 높게 평가받는 흔치않는 민족운동가이자 大韓國人입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에 남한에서 안중근 기념주화가 제작됐고, 2005년 광복 60주년에는 북한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주화가 만들어진 바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남과 북은 안중근 우표를 각각 발행한 바 있습니다. 남북에서 발행된 우표 속 동일인물 중에 안중근 장군 유일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안중근 운동은 이제 남북통일 운동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중근 장군은 순국 전 유언을 통해 자신의 유해처리 문제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일제가 안중근장군 유해를 가족들에게 넘기지 않았지만 안중근장군은 자신의 시신이 당연히 가족들에게 인도될 것으로 확신하고, 조국이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지 말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지 않고서는 죽어서도 고국에 갈 수 없다는 안중근장군이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 이 유언 속에 함축되어있습니다.

'유해를 고국으로 가지고 가지 말고 하얼빈 공원 곁에 임시로 묻었다가 조국이 완전독립되면 조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한 안중근 장군의 유언은 단순하게 가족들에게 전하는 유언이 아닌  살아있는 전체 동포들에게 일치단결해서 조국독립운동에 나서라는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안중근 장군의 유언과 달리 민족분단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겠다며 조국의 독립만을 갈구했던 안중근장군 시각으로 볼 때 남북분단 현실은 참으로 원통하고 비통할 일입니다. 비단 안중근장군 뿐 만 아니라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입장에서 볼때 남북분단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남북 후손 모두는 그 분들에게 분단의 반민족 죄인입니다.

지난해 남북 정부는 공동으로 안중근장군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만약 유해를 찾았다면 어디로 모셔야 안중근장군이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까? 남쪽이 편하실 것 같습니까, 북쪽이 편하실 것 같습니까?
우리는 지금 안중근장군 유해를 찾아서 그가 사랑했던 고국으로 모셔올 자격이 없는 후손들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안중근장군의 조국이 두 개로 쪼개졌기 때문입니다. 1945년 광복 후 안중근장군 유족들 역시 남과 북, 해외로 각기 갈라져 살고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물론 유해의 소재라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안중근 유해찾기 보다도 안중근 정신찾기, 안중근 정신 실천하기가 더 절실한 일입니다.

안중근장군 하알빈 작전 100주년을 맞아 생각해 보는 안중근 정신 실천은 무조건 일본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분단을 극복하려는 실천적 노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안중근장군 평화정신 속에는 한국과 일본이 각가 주권을 인정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협력 속에 공동발전해야 한다고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31살의 사형집행을 앞둔 대한청년의 가슴 속에서 나온 동양평화론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중근장군이 순국 직전까지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동양평화론 속에서 남북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통일 정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대륙침략 원흉인 이등박문의 '일본제국주의 중심의 위장된 전쟁불사 동양평화 정책'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안중근장군의 '전쟁반대 동양평화론'의 핵심은 한국 중국 일본 동양 3국이 각기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협력해서 동북아 발전에 공동으로 기여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형성위한 평화군 창설’ '동양 3국 공동의회 구성'  지역분쟁 방지를 위해 '뤼순지역 공동관리 구역 선포' 제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한 동양 3국의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정책 일환으로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공동화폐 발행’이라는 획기적인 경제공동체 제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연합(UN)이나 유럽공동체연합(EU)보다 앞선 선각자적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안중근장군의 동양평화론을 민족적 과제인 남북평화통일 정책으로 전환해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안중근장군의 후손될 자격이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안중근장군의 민족정신, 평화정신 속에는 남북분단의 고리를 풀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분단극복 열쇠'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북은 ‘안중근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남북이 함께 존경하는 안중근장군의 민족정신 평화정신 앞에 나란히 앉아서 닫힌 가슴을 열고 남북 하나 되기 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입니다.
 
'소설 안중근, 고독한 영웅' 은 안중근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이어받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출판이 준비됐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안중근 정신을 알리고 안중근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소설 안중근’을 기획하고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소설 안중근'의 제목으로 '불멸의 영웅, 민족의 영웅 안중근'으로 정하지 못하고  '고독한 영웅 안중근'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아직도 안중근의 꿈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안중근장군이 바라는 단결된 민족의 꿈을 실현하는 떳떳한 후손들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안중근 소설의 제목을 '고독한 영웅'으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안중근장군을 외롭고 쓸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입니다.

소설 안중근은 일류작가들의 소설적 능력이 총동원된 작품이 결코 아닙니다. 유명출판사에서 발행한 거창한 출판물도 아닙니다. 다만 안중근장군의 정신을 따르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한 '안중근주의자'들의 열정이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앞으로 보다 능력있는 문학인, 예술인, 전문작가들과 안중근 연구가들의 훌륭한 지혜가 모아져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소설이 출판될 수 있기까지 안중근장군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집필에 몰두한 본 아카데미 홍보이사인 안동일 작가와 소설출판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조언을 해주신 서길병 상임이사, 민경갑 상임이사,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사업에 박수를 보내주신 본 아카데미 지도위원이신 김경재 전 국회의원님, 상임지도위원장이신 이승희 전 국회의원님, 편집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이명헌 이사, 변용주 이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이번 '소설 안중근' 출판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자료사진들은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오랫동안 정성껏 모아 둔 자료집에서 발췌했다는 것과 중요한 역사적 자료는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숭모회' 홈페이지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밝힙니다.

2009년 3월 26일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대표 / 정 광 일


▲  소설안중근, '고독한 영웅' 출판기념회가   3월 26일 여의도 보훈회관에서 열렸다. 안중근 의사 순국 99주기 추모식을 겸한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임두성 의원과 김경재 전의원을 비롯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이사들이 참석했다. 사진은 출판기념식 1부행사로 진행된 안중근 의사 추모 동영상을 참석자들이 보고있다.  © 단지12 닷컴
 
'소설 안중근, 고독한 영웅' 출판을 축하하며


안중근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의사의  평화정신을 소재로한 소설이 출판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100년전 안중근의사의 의거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를 단절시키려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권과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평화정신의 실천이었습니다.

100년 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 동양평화를 위협한 일제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제거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안중근 의거는 서른 살의 대한청년이 민족 앞에 몸을 던져 일본의 침략에 무기력했던 동포들에게 항일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우고 잠자는 중국 대륙을 일깨우며 우리 조국의 주권회복과 동양의 평화를 갈망한 역사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안중근의사는 민족정기의 표상으로서 남북한 모두에서 평가받는 독립운동가입니다. 안중근의사는 하얼빈의거 직후 ‘義士’로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가슴에 각인된 대한의군 참모중장 독립특파 대장이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은 민족정기 확립을 위해서는 물론 올바른 국민교육과 민족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은 다음 세 가지로 크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독립입니다. 국권회복을 위해, 안중근 의사는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대한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하얼빈 작전에서 적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습니다.

둘째, 사회정의입니다.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안중근 의사는 백성들에게 폭정을 일삼는 정의롭지 못한 국가권력은 물론,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독립운동마저 파문으로 금했던 종교권위에 맞서 과감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셋째, 평화입니다. 동양평화를 위해, 안중근의사는 한국에 이어 만주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으며, 옥중에서 순국 직전까지『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동양의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안중근의사의 국가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 정신은 민족, 민주, 통일정신으로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국권 침탈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정신은 식민잔재 청산과 자주 독립통일국가 건설로, 인권자유 신장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는 억압과 착취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으로, 동양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화해와 민족협력으로,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연대와 세계평화로 승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우리 앞에 놓인 남북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의 평화정신 속에는 동포화합, 민족단결의 실천적 정신이 녹아있습니다. 국민화합과 남북통일의 이상이 안중근 정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안중근 운동을 전개하는 안중근청년아카데미가 기획한 ‘소설 안중근’은 국민화합과 남북통일을 향한 안중근 운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소설 안중근, 고독한 영웅’은 100년 전 안중근 의사 뿐 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의 헌신적인 항일운동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 속에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이 소설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려는 그의 가족들의 부단한 노력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과 안공근, 백범 김구선생의 비서를 지낸 공근의 아들 안우생,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홍콩에 체류한 안 의사의 아들 안준생이 이 소설의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안공근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백범김구와 함께 요직을 맡았던 인물로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 의거를 기획한 한인애국단 단장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안공근은 1939년 중국에서 의문의 행방불명으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안우생은 해방직후 백범김구 선생 등 임정요원들과 함께 남한으로 귀국, 김구선생의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연석회의 추진 등을 돕다가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가 암살 된 직후 통일정부 수립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고 판단해 남한을 떠나 홍콩으로 잠적하게 됩니다.

작가는 ‘소설 안중근’에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대거 귀국 한 후에도 안중근 둘째 동생 안정근과 아들 준생이 안중근의 유해를 찾기 위해 중국과 홍콩에 남게 된 것에서 소설 스토리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안중근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결합시킨 이 소설이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안중근의사와 그의 유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그 가족들을 소개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소설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소설 안중근 고독한 영웅'은 '안중근 100주년'과 함께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안중근 유해찾기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안중근 유해 보다 안중근 정신 찾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의사는 추모의 대상이 아닌 실천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교훈적 메세지를 우리에게 강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소설 제목으로 선정한 '고독한 영웅'이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참으로 충격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우리모두에게 안중근의사의 '고독함'을 씻어주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본 소설을 기획한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의 용기와 많은 분들이 쉽게 안중근의사의 정신을 전달하기위해 상상력을 동원한 안동일 작가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2009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 순국 99주기날에

조영장 / 안중근 청년아카데미 지도위원 / 제13대,14대 국회의원 

▲  안중근 의사  최후 모습   © 단지12 닷컴


<추천사  / 전라남도지사 박 준 영>
 
  금년은 안중근 의사께서 민족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처단하신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소설이 출판된 것을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자, 우리나라의 주권과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평화정신의 실천이었습니다.
 
  서른 살의 한 대한청년이 조국의 이름으로 몸을 던져, 일본의 침략에 무기력했던 동포들에게 항일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우고, 잠자는 중국 대륙을 일깨웠던 역사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은 민족정기 확립은 물론 올바른 국민교육과 민족통일을 위하여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국권 침탈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정신은 식민잔재 청산과 자주 통일국가 건설로, 인권자유 신장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 운동으로 계승되어야 할 것이며,  동양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화해와 민족협력으로,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연대와 세계평화로 승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전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는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를 소재로, 안중근 의사와 그 가족들이 안고 있었던 고뇌와 애국애족 정신을 잘 표현한 픽션이 가미된 소설입니다. 
 
  이 책을 집필한 안동일 작가는 20년 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만난 언론계 후배입니다.
 
  1993년 남북분단의 문제다룬 SBS 드라마 ‘해빙’의 원작가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문부 장군의 활동을 그린 역사소설 ‘북관대첩비’를 집필한 역사의식이 투철한 작가 입니다.
 
  이 시대 청년들이 안중근 의사를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안동일 작가의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가 출판을 기획한 '소설 안중근'을 통하여 의사 안중근의 당당하고 올곧은 기개와 애국애족정신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기를 기대합니다.
                                  2009년 3월 26일                  



▲  임두성의원이 안중근 의사 순국 99주기 추념사를 하고 있다.   © 단지12 닷컴
 
 안중근은 실천의 대상입니다
 
  안중근청년아카데미가 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소설 안중근' 출판을 축하합니다. 안동일 작가님의 안중근 의사를 향한 열정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100년 전 청년 안중근에 대한 우리들의 호칭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대다수가 흔히 사용하는 안중근 의사에서부터 안중근 선생, 안중근열사, 최근 안중근청년아카데미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안중근 장군, 그리고 문학적 표현으로 사용되는 ‘불멸의 영웅’ 안중근에 이르기까지 100년 전 청년 안중근은 우리들 마음속에 여러 가지 호칭으로 심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소설 안중근 출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청년 안중근에게 또 다른 호칭을 하나 추가하고자 합니다. ‘고독한 영웅 안중근 장군’이라고.
  소설 안중근은 민족의 혼을 상징하는 불멸의 영웅 안중근이 ‘고독한 영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거 100주년, 순국 99주기를 맞아 이제는 우리가 안중근의 고독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대한청년 안중근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동양평화를 외치고, 마지막 교수대에 서는 그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당당하게 외치면서 민족의 제단 위에 몸을 던졌지만, 그는 천주님을 가슴에 간직한 신앙인이었고, 어머니의 아들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두 동생을 둔 큰 형이었습니다.

  청년 안중근의 고독은 순국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조국이 독립되는 날까지 나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기지 말고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은 일본 사법부의 갑작스런 시신인도 거부로 실현될 수 없었고 오늘날까지 그 소재조차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안중근은 시신도 가족들에게 가지 못한 고독한 영웅입니다.

  “두 아들 중 장남 분도를 천주님 앞에 받쳐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양육하라”는 아버지 안중근의 자녀에 대한 유언은 장남 분도가 어린 시절 의문의 죽음을 당함으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청년 안중근은 생의 마지막을 천주님 품속에서 마쳤지만 그가 속한 천주교회는 그를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후 90년 동안 살인자로 규정, 복권을 미뤄왔었습니다. 이 얼마나 고독한 영웅이고 고독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까,

  민족혼의 표상이라는 안중근이 고독한 영웅인 진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렇게 열망했던 조국의 해방, 조국이 독립되는 날 천국에서 춤추겠다고 유언했던 안중근의 조국은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 완전한 독립이 아닌 반쪽 독립 상태에서 6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소설 안중근’에서는 안중근의 가족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안중근 가족 40여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야기와 그 후손들이 남과 북으로 그리고 해외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기막힌 사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은 분명 고독한 영웅입니다. ‘소설 안중근’은 안중근의 고독을 풀어줘야 한다는 숙제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안중근 유해보다도 안중근 정신실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운동이 이제 통일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고독한 영웅 안중근이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을 부여잡고 남과 북을 번갈아 보면서 원통함과 분함을 삭이면서 소리없이 흐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메시지입니다.

  안동일 작가님과 이 소설 출판을 기획한 청년아카데미 정광일대표님의 열정이 고독한 영웅을 불멸의 영웅으로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9년 3월 26일

국회의원 임 두 성
(안중근청년아카데미 지도위원)

 
그는 우리에게 찬란한 빛이다.

그의 민족독립의 정신, 사회 정의의 정신, 평화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으로 다가서 있다.
그가 피 끓는 심정으로 그렇게나 강조한 교만을 버린 겸손의 자세로 단합 한다면 분명코 우리는 산적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다.
그 엄혹했던 시기, 횃불처럼 우리를 밝혔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의 거사가 이제 백주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며 한줌 주저없이 자신의 목숨을 민족 앞에 던진 불멸의 영웅 안중근, 우리는 그 앞에 떳떳할 수 있는가.
 
그는 우리에게 커다란 빚이다.
우리는 독립해 있는가?
우리는 정의로운가?
우리는 평화를 추구 하는가?
우리는 이웃 형제들과 잘 지내고 있는가?
우리는 겸손한가?
이처럼 그는 우리에게 갚아야 할 빚을 지우고 있다.
나이 서른에 그토록 명철했고 담대했던 그.
그는 투철한 군인 이었고, 혜안을 가진 사상가였으며 시를 사랑하고 서도를 알았던  예술가였다.
준수한 용모, 심금을 울리는 언변, 민족을 위해 단지한 손, 적군들도 존경을 금치 않았던 그의 품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민족의 표상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얼마나 좇고 있는가. 얼마나 닮으려고 노력 하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큰 짐이다.
그의 직계 가족들이 모두 그를 따라 조국 광복의 길에 헌신했고 희생돼야 했던 일을 얼마나 기억 하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사라져야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를 되찾는 날.
그의 정신을 오롯이 회복 하는 날.
그 짐을 벗어 버리고, 그 빚을 갚은 뒤, 찬란한 빛과 함께 우리는 마침내 자유하리라.
 
 
<저자 안동일 인사>
 
하고 싶은 말을 반도 채 못한 느낌이다.
쓰고 싶은 글을 반도 채 못쓴 느낌이다.
그만큼 안중근 의사는 무한한 보고다. 파내도 파내도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이다.

 이글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꽤 많은 부분이 상상의 나래 속에서 펼쳐진 허구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해 의사의 사상을 이해하고 따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설의 형식을 취하기로 했던 것이다.
소설이기에 허구가 가미돼 있지만 이글에는 많은 정보와 역사적 사실이 담겨져 있다. 소설적 허구 속에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진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글은 기록이기도 하다.

 당초에는 일본 우익 세력의 끈질긴 방해를 피해 북한을 포함하는 한중일 안중근 주의자 청년들의 단합된 힘으로 하얼빈 공원에서 유해를 찾아 의사 거사 100주년이 되는 올 10월 26일, 해외 동포들의 성금으로 제작된 동상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전개로 그리려 했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 하다는 생각에서 유보하기로 했다.
 유해가 하얼빈 공원에 묻혀 있다는 것은 희망적 상상이다. 하지만 그곳 동포들이 뜻있는 중국인들과 더불어 안중근 의사를 흠모하고 선양하는 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동상을 제작할 성금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글의 소설적 전개에 많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홍콩의 진상문 노인과 미즈노 유키나가등 그를 둘러싼 인물 들은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홍콩 천주교회가 안중근 의사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숭모하고 있으며 그곳에 연구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일본 센다이 대림사의 일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안 의사는 대한인 뿐 아니라 동양 3국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정신 속에 살아있다.
요즘에는 천주교 뿐 아니라 개신교, 불교 그리고 민족종단 대순진리회, 원불교 등 각 종교단체에서도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많은 연구회가 생겨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종교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과 헌신성이 진정한 안 의사 유해송환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 글은 해방정국에서 백범 김구선생의 비서를 하다가 김구 선생 암살 직후 북으로 간 안 의사의 조카 안우생을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전쟁 와중에 부산에서 병사한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많은 공을 들였다.

 안준생, 안우생 4촌의 상해 얘기와 그들의 유해 발굴 이장은 상상이다. 안우생이 북한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에 적극 참여 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 집안에서 40 여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그 가운데 12명이 서훈된 집안은 안 의사 집안 밖에 없다. 어느 집안이 이와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다들 한두 사람의 운동가를 배출 했을 뿐이다. 안 의사 집안의 그것은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당연시 여겼는지 백안시 했고 그들을 감싸는 것에 소홀 했다. 또  안 의사 집안사람들이 겸양의 미덕을 보였던 것도 이에 일조 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소설에서는 그것을 부각하려 애를 썼다.
 
이글을 쓰게 한 것은 8할이 인터넷 정보였다.

인터넷의 정보가 없었다면 두 달 남짓의 짧은 기간에 이글을 써내는 것은 불가능 했다는 밝혀 둔다.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큰 도움을 줬다는 얘기다.  인터넷에 안 의사를 위한 글과 자료를 올린 모든 이들이 공동 저자인 셈이다.
이 글이 사람들에게 읽혀져 조금이라도 호평을 받고, 안 의사 정신 선양에 일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모두 그들의 공이다.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이 진행형 인 것처럼 이 소설도 진행형이다.
사라진 장군이 돌아 올 때 까지
소설은 계속 쓰여 질 것이다.

이 책의 기획부터 출판 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했던  안중근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 정광일 대표와 교정을 해준  손영순 선배, 그리고 며칠씩 날 밤을 새워야 했던 나를 열심히 내조해준 세라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09년 3월 26일   남한산성 아래 마천장에서 저자.
 
▲  김경재 전의원은 축사에서 안중근 장군의 유해찾기 보다 정신찾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단지12 닷컴

기사입력: 2009/03/27 [11:40]  최종편집: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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