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홍근(安洪根) 선생이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에 참가하고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시베리아 내전 후 블라디보스토크 수청촌(水淸村)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해 전달한 공적 등을 발굴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로써 안 의사 가문은 그동안 포상된 안중근 의사(1962, 대한민국장)ㆍ안명근(1962, 독립장)ㆍ안춘생(1963, 독립장)ㆍ최익형(1977, 독립장)ㆍ안경근(1977, 독립장)ㆍ안정근(1987, 독립장)ㆍ안봉생(1990, 애국장)ㆍ오항선(1990, 애국장)ㆍ조순옥(1990, 애국장)ㆍ안원생(1990, 애족장)ㆍ안공근(1995, 독립장)ㆍ안낙생(1995, 애족장)ㆍ조성녀(2008, 애족장)ㆍ안태순(2009, 애족장) 선생 등 모두 15분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이는 특히, 올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안홍근 선생은 1918년 4월 28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포포프스카야 거리 18번지에 있는 조선학교 강당에서 개최된 ‘한인사회당’ 정식 선포를 위한 협의회 자리에 있었다.
최초의 한인 볼셰비키인 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의 지도 하에 이동휘, 김립, 유동열, 박애, 이인섭, 심백원, 김용환, 오성묵, 이한영, 오와실리, 오하묵 등과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이다. 이들은 같은 해 5월 11일 포포프스카야 거리 15번지에 있던 조선인민회관(보훈처에 따르면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같은 번지를 포함한 부지에는 현재 빵공장이 있음)에서 한인사회당의 정식창립을 위한 한인사회당 중앙위원회 확대총회를 개최해 중앙간부를 선출하고, 당기관지 ‘자유종’ 창간 및 장교 훈련을 위한 군사학교(교장 유동열) 설립을 결정했다.
안홍근 또한 1918년 8월 말 노령 이만에서 독립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일본군과 교전했다. 당시 하바로크스크에서 원동소비에트인민위원회는 전쟁을 중지하고 빨치산 투쟁을 하기 위해 적위군들을 아무르주 삼림으로 후퇴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안홍근은 부라뵤바-아무르스카야 역 전투와 이만 전투에서 왜병이 나타나자 러시아 지도자들의 명령을 위반하고 “최후 한 사람까지 왜놈을 죽이고 우리의 원수를 값자”고 달려나가 단병접전에 뛰어들었다.
이만에서 퇴각할 때 왜놈만 보이면 “나의 형 안중근과 명근에 원수를 갚겠다”며 대오에서 뛰어나갔다고 전해진다. 안홍근은 1918년 9월 초 크라스나야 레치카역에서 다른 동지들과 중국인으로 변장한 일본군 3명을 체포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편, 안홍근 선생의 친형인 안명근(安明根) 선생은 1910년 독립군 자금모집 활동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한 공적으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서훈됐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