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신자’로 인정치 않았던 뼈아픈 과거 “일제 협조하며 성장…면죄부 활용 경계를”
▲ »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10일 뤼순감옥 면회실에서 아우 정근·공근과 함께 면회온 빌렘 신부를 바라보며 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단지12 닷컴 | |
2010년 3월26일 한국 가톨릭은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국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가 주교좌성당에서 교구 차원의 공식적인 안 의사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처음이다.
안중근 의사가 19살 때인 1897년 1월, 안 의사와 가족, 친척들은 아버지 안태훈의 권유로 36명이 동시에 프랑스인 빌렘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토마스란 세례명을 받은 안중근은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해 총대(성당 사무장)로서 독실하게 교회 활동을 했다.
국외로 망명해 의병 활동을 하던 안중근이 1909년 10월26일 일제의 최고실력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 당시 한국 가톨릭의 최고지도자인 프랑스인 뮈텔(1854~1933) 주교는 일본 검사도 허락한 신부의 면회와 성체성사를 거부하고, 안중근이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도 부인했다. 또 그는 황해도 신천 성당에서 함께 지내던 안 의사를 찾아가 사형 직전 종부성사를 한 빌렘 신부에 대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2개월간 미사 집전을 금하는 성무집행 금지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안중근의 신앙심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일본인 검사 앞에서 가톨릭 신자임을 밝혔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톨릭에서 죄악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평화로운 남의 나라를 침략해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죄악이 되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장남 분도를 가톨릭 신부로 키워달라고 아내에게 유언했다.
1890년부터 1933년 숨질 때까지 우리나라 가톨릭의 최고지도자였던 뮈텔 주교는 일제의 침탈을 수수방관하는 데서 나아가 일제를 적극 도왔다. 지난해 공개된 뮈텔 주교의 1911년 1월11일 일기를 보면, 안중근 일가족과 가까운 빌렘 신부가 안중근의 사촌동생 야고보(안명근)로부터 받은 고해성사를 듣고는 ‘조선인들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안중근의 동생 야고보가 있다’는 ‘정보 보고’를 편지로 보내자, ‘눈길을 헤치고 가서’ 일제 아카보 장군에게 알려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의 밀고로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 105인’이 검거된다. 후일 개신교, 천도교, 불교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힘을 합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가톨릭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을 비롯해 가톨릭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국외자’로 남는다.
1970년대에 출범한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한국 가톨릭계에선 안중근 복권운동과 함께 안중근 정신을 잇는 운동이 벌어졌다. 제국주의의 일원이던 프랑스인의 시각으로 식민지 백성의 의거를 ‘살인 행위’로 단죄한 것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을 놓고 가톨릭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3년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리고, “안 의사를 포함해 일제 때 이 땅의 국민이 자구책으로 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로, 의거로 봐야 한다”며 안 의사를 복권시켰다.
이후 안중근은 가톨릭 제도권으로 돌아왔고, 한국 가톨릭의 상징으로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에 협조하며 가톨릭의 성장만을 꾀하던 당시 지도부의 맥을 이어온 한국 가톨릭이 ‘가톨릭에도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인물이 있다’며 안중근을 이용하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중근 평전>과 <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 등의 저서를 통해 ‘가톨릭교인 안중근’을 조명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권력의 편에 서서 약자의 편에 서는 신부들을 내치는 현 가톨릭에서 안중근 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깨물지 못한 혀>에서 이 문제를 다룬 김유철 ‘가톨릭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한국 가톨릭에서 안중근과 친일 등에 대한 참회가 선행됐다면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하는 등 권력 협조라는 이름으로 불의가 계속 이어져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성 미리내실버타운에 오는 26일 안중근 동상을 봉헌하기에 앞서 5억원 규모의 바보장학회를 설립한 방상복 신부는 “안중근, 노무현, 김수환처럼 공익을 위해 개인을 버릴 수 있는 바보들의 출현을 염원하며 가톨릭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참회하고 그런 행동과 삶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현 /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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