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는 다시 러시아 영토인 연추(煙秋:엥치우)방면으로 돌아왔습니다. 연추는 강동에서 의군 동지들을 규합하던 중심지입니다. 그곳에서 옛날 친구들을 더러 만났으나 안의사 피골이 상접하여 전혀 옛모습이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그들은 안의사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지난번 전투를 회고해 보면, 의사님 말씀대로 "천번 만번 생각해 보아도, 만일 천명(天命)이 아니었더라면 전혀 살아올 길이 없었을 것"이나, 안의사께서는 실로 천명에 의해 목숨을부지해서 장차 거사를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안의사는 연추에서 십여일 묵으며 몸을 치료한 뒤에 블라디보스톡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이르니 그곳 동포들이 환영회를 차려놓고 의사일행을 반겼습니다. "패군한 장수가 무슨 면목으로 여러분들의 환영을 받을 수가 있겠소"하고 부끄러워 하며 사양했으나, 그들은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는 것은 병가지 상사(兵家之常事: 군사상에 언제나 있는일)이니 무엇이 부끄럽소. 더구나 그같이 위험한데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니 어찌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인즉슨 고맙기 그지 없었습니다.
초패왕 항우가 패장이 되어 강동의 부로를 만날 면목이 없어 자결까지 했으되, 안의사 심정이 이와 다를 바 없었거늘, 오히려 이토록 환대와 위로를 받으니 사나이 격정(激情)이 오죽했으리오. 동포들의 격려에 힘입어 안의사는 그곳을 떠나 다시 하바로프스크(河發浦:하발포)로 향했습 니다. 하바로프스크는 블라디보스톡 정북방 평양-부산간 거리 쯤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흑룡강(아무르강)이 사할린으로 흘러가는 중류 하안도시(河岸都市)로서 옛부터 소련극동지방의 최대도시입니다. 여기서 기선을 타고 흑룡강 상류 수천 여리를 시찰하고, 구국의 길에 투신할 의리 남아를 찾아 혹은 한국인 유지의 집도 방문하고, 수찬(水淸:수청)등지에 이르러 혹은 교육에 힘쓰기도 하고, 혹은 연설로써 혹은 집회로써 사회를 조직하기도 하면서 각방면을이곳 저곳 두루 다녔습니다. 다스비다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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