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가 일본군 파출소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쳐 나와 기절해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마침 냇가였습니다. 하늘에 축도(축원하는 기도)를 올리기를,"죽어도 속히 죽고 살아도 속히 살게 해주소서..."하고는 냇물을 배가 부르도록 실컷 마시고는 그대로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이튿날 동지 두사람은 너무도 괴로운 탄식을 그치지 않으므로 이같이 타일렀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소. 사람은 비상한 곤란을 겪은 다음에라야 비상한 사업을 이루는 것이오. 죽을 땅에 빠진 다음에라야 살아나는 것이오. 이같이 낙심한대서 무슨 유익이 있겠소. 천명을 기다릴 따름이오". 幸勿過慮 人命在天矣 何足憂也 人有非常困難 然後 必成非常事業 陷之死地 然後生矣 (행물과려 인명재천의 하족우야 인유비상곤란 연후 필성비상사업 함지사지 연후생 의) 말인즉 큰 소리를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머리 속을 스치는 동지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아닌 미국의 죠지 와싱턴이었습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독립전쟁을 벌였고, 독립군 사령관으로서 싸워 천신만고끝에 승리를 쟁취했고 미국민들로부터 초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추대된 사람 아닙니까.
안의사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다짐했습니다. "옛날 미국독립의 주인공인 워싱턴이 7,8년동안 풍진속에서 그 많은 곤란과 고초를 어찌 능히 참고 견디었던고.참으로 만고에 둘도 없는 영걸이로다. 내가 만일 뒷날에 일을 성취하면 반드시 미국으로 가서, 특히 워싱턴을 위해서 추상하고 숭배하고 기념하며 뜻를 같이 하리라. (追想崇拜 記念同情矣 추상숭배 기념동정의) (확실히 수준차이가 나지요? 보통사람하고... 사람은 저마다 자기 수준의 사람을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고 사귀길 희구하거든요. 이도령은 춘향을 그리 하고, 방자는 향단을 그렇게 하지 않던가요?---필자) 그리고는 그날 세사람은 다시 힘을 내어, 죽고 살고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대낮에 인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인지 산속 두메 산골에서 집 한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반사적으로 이마에 십자 성호를 긋고는 안의사가 주인을 불러 밥을 빌었더니 그 주인이 조밥 한 사발을 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이 하는 말이,"당신들은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가시오. 어서 가시오. 어제 이 아랫마을에 일본병정이 와서 죄없는 양민을 다섯사람이나 묶어가지고 가서 의병들에게 밥을 주었다는 구실로 쏘아 죽이고 갔소. 여기도 때때로 와서 뒤지니까 꾸짖지 말고 어서 가시오" 하므로 안의사 일행은 두말 하지 않고, 밥을 안아 쥐고 산으로 올라와 세사람이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같은 별미는 세상에서 다시는 더 얻어 볼 수 없는 맛이엇습니다. 아마 하늘 위에 있는 신선식당 요리(天上仙店料理 천상선점요리)일 것입니다. 밥을 굶은지가 이미 엿새가 지났던 탓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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