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중장 안중근이 사로잡은 일본 군인과 장사치들을 어질게 타일러서 무기까지 줘서 놓아주자 우리편 장교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습니다. "어째서 사로잡은 적들을 놓아 주는 것이오?"
이에 안의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현재 만국공법(萬國公法)에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는 법은 전혀 없다. 어디다가 가두어 두었다가 뒷날 배상을 받고 돌려 보내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요사히 군인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군대 전투수칙(에프엠:육전교범)입니다만 1908년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제분업자였던 앙리 뒤낭이 '전쟁 중에도 자비를''모든 사람은 형제다'라는 구호하에 몸소 자신의 생업도 부귀도 명예도 다 팽개치고 전장터에 뛰어들어 부상병을 치료하고 간호하고 마실것 먹을 것도 조달해 주면서 유럽 열강에 호소한 바로 그 내용입니다.
스위스 출신 앙리뒤낭의 정신을 드높여, 빨간바탕에 흰색 십자가 스위스 국기를 거꾸로하여 백색바탕에 적십자를 그린 적십자 깃발아래, 선혈이 낭자한 아비규환의 전장터에서 천사의 손길로 전쟁희생자를 보호하자는데 반대하는 나라가 있을리 없었습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새로운 전쟁법이 마련되어,부상병 치료는 물론, 포로를 함부로 살상해서는 안되고, 그들에게 응분의 봉급도 주고 서신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국제적인감시하에 인도적인 대우를 해주도록 조약으로 명문화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국제인도법이란 것이고 안의사는 이를 만국공법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일찌기 안의사께서 프랑스어 공부를 하시고 프랑스신부들과 교류하면서 폭넓은 서양학문 을 접하셨다는 것은 독자께서도 알고 계실 터지만 최근 독립전쟁을 준비하시면서 안의사 가 전쟁에 관련한 이모저모를 알아놓으시고 전쟁법규까지도 익혀 놓으신 덕택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안의사는 이어서 " 더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의로운 말이라, 안 놓 아 주고 어쩌겠는가."라고 하자, 여러 사람들이 떠들어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적들은 우리 의병들을 사로 잡으면 남김없이 참혹하게 죽이는 것이요. 또 우리들도 적 을 죽일 목적으로 이곳에 와서 풍찬노숙해 가면서 그렇게 애써서 사로잡은 놈들을 몽땅 놓아보내다면, 우리들이 무엇을 목적하는 것이오?" 이런 말을 듣고 안의사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타일렀습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적들이 그같이 폭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들이 다함께 노하는것인데, 이제 우리들마저 야만의 행동을 하고자 하는가. 또 일본의 4천만 인구를 모두 다 죽인 뒤에 국국권을 도로 회복하려는 계획인가. 저쪽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약하고 저들은 강하니, 악전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써 이등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서 열강의 동정을 얻은 다음에라야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이 이른바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써 악한 것을 대적한다는 그것이다. 그대들은 부디 많은 말들을 하지 말라" 적이 불의를 저질렀을때 이쪽에서 그와 똑같은 형태의 아니 그 몇십 몇백배로 악랄란 복 수를 해서 분을 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만 법은 그러한 복수를 허용하지 않습니 다. 개인적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하고, 국가가 국법에 의하여 악행을 저지하고 악인 을 징벌하겠노라는 것이 법의 정신입니다. 안의사는 이러한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들끓으며 격노한 장교들 몇은 부대를 나누어 안중근을 떠나 가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뒤에 아군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4,5시간의 충돌끝에 날은 저물고 폭우는 쏟아지 고....(다음에 계속)
*국제인도법(전쟁법)이란? 국제인도법은 전시 희생자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법과 전투의 수단과 방법의 규제에 관한 헤이그법으로 구성되며, 그 주된 내용은 “상병자 및 조난자의 보호”, “포로의 대우”, “민간주민의 보호”, “문화재의 보호”, “교전자”, “전투수단에 관한 법적 규제”, “전투방법에 관한 법적 규제”, “국제인도법의 실시조치” 및 “전쟁범죄”등이다. ‘전쟁과 평화의 법‘, 이용호 지음, 영남대학교 출판부, 165페이지 참조
인류는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의 모색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 왔지만, 전쟁은 끊임없이 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이 근절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와 제3국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여러 차례 국제적인 조약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제네바협약(1864~1949)과 헤이그협약(1899~1907)으로 인하여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완화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인도법이 형성되었다.
국제인도법의 조항을 살펴보면 전쟁 포로 같은 경우 수용소의 시설까지 규율 할 정도로 비교적 자세하기 기술되어있다. [ 억류국은 수용소의 청결 및 위생의 확보와 전염병의 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위생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제29조 1항) ] 영화 ‘하트의 전쟁’에서와 같이 비록 포로이지만 연합군 대령은 포로수용소에서도 그 계급을 대우받는 데 이 역시 법에 자세히 서술되어있다. [ 장교포로 및 이와 동등한 지위에 있는 포로는 그 계급과 연령을 적절하게 고려하여 대우하여야 한다. (제44조 1항) ] 또 놀라운 사실은 포로라 할지라도 억류국에서는 그 포로의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해야 함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 포로에게는 억류국 당국이 직접 공정한 노동임금을 지불하여야 한다. 노동임금의 액수는 억류국 당국이 결정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1일 노동에 대하여 1/4 스위스프랑 미만이어서는 아니 된다. (제 5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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