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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학 안중근평화재단 동상건립추진위원회 회장 인사
"안중근 동상과 소통할 수 있는 청년들이 있어야"
 
이진학   기사입력  2009/11/03 [08:32]
저는 5년전 중국 하얼빈에서 사업장을 준비하면서 안중근 장군을 만났습니다. 업무상 만나는 중국인들과 안중근을 소재로 대화를 하면 잘 통했습니다. 중국인들도 안중근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얼빈을 생각하면 안중근 장군이 동시에 떠오르지만 하얼빈 그 어느 곳도 안중근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업장을 준비하면서 아무도 몰래 안중근 동상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안중근 동상설치에 대한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2006년 1월 16일, 하얼빈 중심가 중앙대가 쇼핑거리에 안중근 동상을 세웠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 사업장 개업 보다 안중근 장군의 동상을 세운 것이 더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보람과 긍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외국인 동상을 세워서는 안된다는 중국 중앙정부의 방침이 전달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같은 중국정부의 방침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중관계를 고려해 이미 세워진 동상을 어찌하겠는가 하는 예상은 빗나갔고 11일 만에 동상을  사무실로 옮겨야했습니다. 그 후 여러경로를 통해 햇볕있는 곳에 동상을 다시 세우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년 8개월이 지난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안중근 동상은 하얼빈 역과 하얼빈 공원, 안중근 장군이 5개월 동안 수감됐던 당시의 뤼순 감옥과 뤼순재판소를 거쳐 9월 1일 인천항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중근평화재단 중국위원회, 호주위원회등 해외동포들의 큰 성원도 있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안중근 장군 동상은 국회사무처의 배려로 지난 50일 동안 국회안 헌정기념관 앞뜰에 임시전시됐고, 안중근 장군 동상 귀국을 축하해주었고 국방대학교, 경상대학교, 나사렛대학교 등 교육기관과  전남 함평군청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안중근 장군의 의거현장인 하얼빈에서 귀국한 안중근 동상을 유치하겠다는 지자체와 기관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 하얼빈시와 자매도시인 부천시의 안중근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홍건표 시장님을 비롯한 시청직원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부천시민들의 열성적인 안중근 동상 모시기 열정은 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100주년에 최초의 '안중근 공원'을 탄생시켰고 안중근 역사를 새롭게 쓰는 중대한 계기를 부천시가 만들었습니다.

안중근 100년을 계기로 안중근 장군에 대한 재발견 운동이 각계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안중근 운동에 부천시가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안중근 장군 동상을 붙잡고 고뇌했던 외로움이 부천의 애국시민들의 안중근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천 안중근 공원에 우뚝 선 안중근 동상이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과 역사적 소통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00년 전 대한국인 청년 안중근과 100년 후 2009년 대한민국 청년들과 정신적 교감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안중근 장군 동상을 세우고자 했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장군 동상의 귀국과 부천 동상제막식을 위해 정성을 다 해주신 홍건표 시장님을 비롯한 시청 관계자님들과 특별히 미국, 일본, 호주와 중국하얼빈을 비롯해 북경, 광주, 대련, 심양, 상해에서 동상제막 축하를 위해 부천에 오신 안중근평화재단 해외지회 임원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평화재단 동상건립위원회 회장 이 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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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3 [08:32]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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