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100년, 그러나 우리는 오늘 안중근 동상 앞에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고, 안중근의 유묵 앞에서 죄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서른살 사형수 청년 안중근이 동포의 화합과 단결을,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그 토록 열망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우리는 안중근 장군 동상 앞에서 죄송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나의 시신을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조국이 완전 독립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는 100년 전 유언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도, 유언을 직접 들었던 두 동생 안정근. 안공근까지 안중근 장군의 3형제 모두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고 조국이 독립되는 날 천국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리라”는 유언을 기억하면서도, 안중근 장군의 조국은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안중근의 유족들은 남한과 북한으로, 그리고 해외로 흩어져 살고있으니 어찌 안중근 이름을 자신있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안중근 장군의 유해를 찾는다면 남과 북, 어디에 안장해야 합니까?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외침이 100년을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 증언이 100년 동안 허공에 멤돌고 있습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우리 군대가 강제 해산되는 치욕의 현장을 서울에서 목격하고 부산항을 통해 동해바다를 거쳐 만주벌판으로 망명 길을 떠났던 청년 안중근의 불끈 쥔 주먹을 생각합니다.
연해주에서 의병을 조직해 국내진공작전을 지휘하다가 거대한 쓰나미 처럼 밀려오는 일제의 대륙침략을 막기위해서는 이등박문을 제거해야 한다는 특공작전을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던졌던 의병장 안중근을 눈 빛을 생각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의 가슴에 육혈포 세례를 남기고 대한독립만세를 목 놓아 외친 안중근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국을 침략한 적군의 수장을 사살하고 적군에 체포되어 맞이하는 죽음이 결코 억울하지 않다면서 먹물에 군인정신을 담고 대한국인의 청년기상을 붓 끝에 실어 써내려간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 속에 숨 쉬고 있는 안중근 장군의 기개를 생각합니다. 안중근 100년, 보통사람들의 안중근 운동을 선언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는 안중근의 민족혼을 가슴에 담고 미래를 향해 걷고, 달리고, 뛰고, 쓰고, 외치고 제대로 세우는 안중근 평화운동을 전개합니다. 안중근 평화마라톤과 평화대행진 걷기대회, 안중근평화축구대회, 안중근 정신 속에서 동포화합과 남북통일 열쇠찾기 토론회와 안중근 웅변대회 그리고 안중근의 얼을 붓 끝에 담아 체득하기 위한 서예전이 안중근 운동의 출발입니다. 이것은 안중근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기 위해 안중근 장군의 혼이 숨쉬는 안중근 동상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청년 안중근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안중근 운동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고, 동포화합을 추구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 안중근의 두 조국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민족 하나되기 운동으로 전진시키는 것입니다. 안중근 유해찾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중근 정신찾기입니다. <정광일 /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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