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100년 학술토론회 패널에 나온 배영대 기자 © 단지12 닷컴 | |
김경재 전 의원님과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이승희 지도위원장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의 귀중한 발제문을 읽고 함께 토론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특히 안중근 장군을 주제로 한 토론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안중근 장군에 관해 좀 더 공부한다는 자세로 토론에 임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이 토론회의 전체 주제로 잡힌 호칭문제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호칭과 正名(정명)의 문제 우리는 ‘의사(義士)’라는 호칭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처음 문제를 제기한 분이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의 이승희 지도위원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 3-4년 전부터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같은 선구적 문제제기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는 올해 들어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류의 변화에 민감한 저명 인사들에게서 장군 호칭을 사용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컨대 이름만 대면 아는 어떤 분이 공식 자리에서 연설을 하면서 ‘의사 안중근 장군’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번 그런가보다 했는데 계속 ‘의사 안중근 장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분 나름대로 어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장군이란 호칭의 정당성이 확산되고 수용되는 사례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승희 위원장의 오늘 발표문은 왜 장군으로 불러야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역사의 기억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놓쳐선 안될 것은 해석 이전의 사실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사실 그는 장군이었습니다.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직후 체포되었을 때부터 순국할 때까지 자신이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의 군인 신분이었음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이승희 위원장의 발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분명한 사실의 문제에 소홀했었음을 환기시켜 줍니다.
이 위원장의 발제에서 토론자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안중근에게 ‘의사’ 호칭을 붙이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위원장은 “일본 내부 갈등의 타협안으로서 ‘의사’라는 호칭이 우리에게 주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토론자가 과문한 탓에 이런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획기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안중근 의거 100주년 관련 기획취재를 전담하면서 느낀 궁금증의 하나도 이와 관련됩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안중근 관련 학술대회에 일본인 학자들이 종종 참여합니다. 그때 일본학자들이 한국인이 듣기 좋은 발언을 하는 현상을 접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 라는 궁금증입니다. 이 위원장의 표현을 따르자면, “일본에도 양심이 있었구나”라고 평가할만한 안중근과 관련된 자료와 분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안중근 장군의 의기에 매료된 일본인들이 많았다기 보다 일본 내부의 세력 갈등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장군의 거사, 인물, 재판 등의 평가에 있어서 우리 측에서 보면 긍정적인 반응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배경이 해방 후 교묘하게 우리를 현혹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안중근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주의 시각에서 안중근 의거를 평가하는 관점은 우리 사회에 비교적 풍부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복합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거는 국제적인 사건입니다. 의거가 벌어진 하얼빈과 만주는 당시 세계 열강들의 탐욕과 각축이 집중된 곳이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가 100년 전의 하얼빈과 만주의 정황과 유사한 점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안중근 사건에 투여한 근원적 이해관계의 내막을 좀 더 세밀히 관찰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 입맛에 맞는 용어와 관점을 사용한다고 해서 즉각 일희일비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승희 위원장의 문제제기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께서 바쁘시겠지만, ‘의사’라는 호칭 사용과 일본의 세력 갈등에 대해 앞으로 좀 더 많은 분석을 해서 토론자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기를 이 자리를 빌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위원장의 발제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탁견은 안중근 의거를 일종의 팀웍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주로 안중근 혼자만 집중 조명되고 있는데 반하여, 이 위원장은 ‘하얼빈 대첩’이란 ‘군사작전’에 투입되었던 우덕순, 류동화, 조도선, 그리고 배후지원을 한 김성백도 함께 기억되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선 토론자의 불필요한 췌언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명(正名)’ 사상은 동양의 오래된 전통입니다. 정명의 명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명예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정명’에서 찾았습니다. 공자가 중시한 왕도정치란 명과 실이 상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명과 실의 문제는 동양 전통의 핵심적 주제입니다. 공자와 함께 동양 전통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 것은 노자입니다. 노자를 관통하는 사상도 명과 실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노자에는 ‘무명(無名)’이라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노자는 정치의 본질을 ‘무명’에서 찾았습니다. 노자는 명과 실의 문제에서 어떤 명이 과연 실을 포괄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자가 현실 정치적이라면 노자는 성찰적이고 정치철학적입니다. 동양 전통에서 공자와 노자의 두 흐름이 모두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나의 문제입니다. 안중근이 걸어간 길은 ‘안중근의 도(道)’입니다. 안중근의 도를 따르고자 하는 나의 도, 그리고 우리의 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안중근을 해석하는 오늘 우리의 현재적 문제의식과 직결됩니다. 김경재 전 의원님의 발제는 그같은 현재적 의미를 잘 제기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 ‘안중근 도(道)’의 현재적 의미 김경재 전 의원님의 발제는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현재적 의미를 잘 제시해주셨습니다. 김 전 의원님께서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오늘날 ‘남북평화론’으로 접목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남북평화’가 안중근 장군이 숙원했던 ‘동양평화’의 핵심적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김 전 의원님의 제안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실질적으로 계승하면서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잘 살려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김 전 의원님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남북평화론으로 이름만 바꿔도 다 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안중근이 제안한 동양 3국의 공동은행·공동화폐는 남북공동은행·남북통일화폐로 연결되고, 동양 3국의 연합군 창설은 남북연합군으로, 동양3국 공동의회는 남북통일의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 전 의원님의 발제를 보면서 제 무릎을 탁 치게 만든 부분은 무엇보다 남북이 만든 우표나 주화 중 유일하게 겹치는 인물이 안중근 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향후 남북공동통일화폐에는 안중근 장군의 초상화가 사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대목입니다. 김 전 의원님의 지적처럼 안중근 우표가 붙은 우편물이 남북으로 갈 수 있고, 안중근 주화가 남북 교역이나 개성공단에서 통용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상상은 현재를 추동하는 힘이며 동시에 과거를 되새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중근의 의거와 사상이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로 연결된다는 것을 김 전 의원님의 발제를 통해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안중근 장군은 동양평화론을 제안했고, 21세기 초 김경재 전 의원은 남북평화론을 제시했습니다. 20세기 초 하나의 이상에 불과했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21세기 ‘동아시아공동체’ 논의나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지향하는 각종 ‘동아시아 담론’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평화 담론은 결국 남북 평화의 전제가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김 전 의원님의 제안은 매우 시의적절한 탁견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 필자의 눈길을 특히 사로잡은 것은 남북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남북 ‘평화’를 앞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 방안도 없이 어느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든 통일지상주의만을 강변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해왔습니다. 오늘 김 전 의원께서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주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평화 통일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그리로 가는 길에는 매우 복잡한 함수가 내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평화이며, 그것이 곧 정도(正道)의 명분이고, 그것이 바로 안중근 장군이 일본 제국주의와의 ‘동양평화 담론’ 투쟁에서 자신의 정도를 끝까지 지켜내고 결국 역사적으로 승리한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두 분의 고귀한 발제에 다시 감사드리며 이상으로 토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배영대 기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