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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3대정신, 국가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
<안중근 100년 학술토론회 토론자 발표 요약>
 
안동일 / 작가   기사입력  2009/10/29 [08:20]
▲ 안동일 작가    © 단지12 닷컴
나는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선생을 우리 빛이요, 그리고 빚이요한편으로 짐이라고 생각 한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우리에게 찬란한 빛이다.
그 엄혹했던 시기, 횃불처럼 우리를 밝혔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의 거사가 이제 백주년을 맞게 된다. 그의 민족독립의 정신, 사회 정의의 정신, 평화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으로 다가서 있다. 그가 피 끓는 심정으로 그렇게나 강조한 교만을버린 겸손의 자세로 단합 한다면 분명코우리는 산적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했던가.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며 한줌 주저없이 자신의 목숨을 민족 앞에 던진 불멸의 영웅, 우리는 그 앞에 떳떳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큰 빚을 지우고 있다.

우리는 안장군 정신을 생각하면서 이런 자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독립해 있는가?
우리는 정의로운가?
우리는 평화를 추구 하는가?
우리는 이웃 형제들과 잘 지내고 있는가?
우리는 겸손한가?  

나이 서른에 그토록 명철했고 담대했던 그.
그는 투철한 군인이었고, 혜안을 가진 사상가였으며, 시를 사랑하고 서도를 알았던 예술가였다.

준수한 용모, 심금을 울리는언변, 민족을 위해 단지한 손, 적군들도 존경을 금치 않았던 그의 품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민족의 표상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얼마나좇고 있는가. 얼마나 닮으려고 노력 하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큰 짐이다.
그의 직계 가족들이 모두그를 따라 조국 광복의 길에 헌신했고희생돼야 했던 일을 얼마나 기억 하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사라져야 했던모양이다.

우리는 그의 유해조차 찾지못하고 있다. 
그를 되찾는 날.
그의 정신을 오롯이 회복 하는 날.
그 짐을 벗어 버리고, 그 빚을 갚은 뒤, 찬란한 빛과 함께 우리는 마침내 자유하리라.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은 민족정기 확립을 위해서는 물론 올바른 국민교육과 민족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가독립이다. 국권회복을 위해, 안중근 의사는 의병부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을 전개했으며, 대한국(大韓國) 의병(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의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독립전쟁을 일으켜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둘째, 사회정의다. 민권과 자유가 신장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안중근 의사는 백성들에게 폭정을 일삼는 정의롭지 못한 국가권력은 물론, 정교(政敎) 분리를 주장하며 독립운동마저 파문으로 금했던 종교권위에 맞서 과감히 항거했다.  

셋째, 동양평화다. 동양평화를 위해, 안중근 의사는 한국에 이어 만주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으며, 옥중에서 순국 직전까지『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동양평화의 근본 정신을 밝히고자 했다.  

안중근 의사의 국가독립, 사회정의, 동양평화 정신은 민족, 민주, 통일 정신으로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국권 침탈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정신은 식민 잔재 청산과 자주 독립국가 건설로, 민권자유 신장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는억압과 착취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으로, 동양평화사상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화해와 민족공조로,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연대와 세계평화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동양평화론」저술은 6회에 걸친 재판과정을 끝내고 여순 지방법원 법정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뒤부터였다. 사형집행 10여일을 남기고 31살의 대한 청년이 수감생활 속에서 동양평화를 노래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평화를 갈구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사형수 안중근 의사가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정모 옥방에서 쓴 미완의 저술, 동양평화론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성패는 만고에 항상 정해진 이치이다. 오늘날 세계는 동서로 갈라지고, 인종이 각각 다르며, 서로 경쟁하기를 밥먹듯 하며 이기(利器)연구에 농상보다 더욱 열중하여 새로 전기포(電氣砲),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 등을 발명하고있으니, 이것들은 사람이나 사물을 상해하는 기계들이다. 젊은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에 몰아넣어 수 없는 귀중한 생령들이 희생물처럼 버려져, 피가 내가 되어 흐르고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어 그칠 날이 없다."

안중근 의사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 속에 국제사회가 자국의 이익과발전을 위하여 약소국을 제물로 삼는 시대적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 인류의 공동번영이란 대전제가 되는 가치들은 무시한 전쟁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핵심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동양평화를 위해 공동노력을 통해 공동번영의 길을 가자고 하는 제안이다. 마치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31살의 대한청년의 가슴 속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 진다. 오늘 날의 정책으로 시행해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다. 

내용 중에는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형성과 국제 평화군을 창설하자는 것도 있고, 동북아 개발은행 설립과 공동화폐를 발행하자는 제안도 들어있고, 공동의회 구성도 있다. 안중근 의사는 요즘 표현대로라면 능히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남을만한 "전쟁반대 평화주의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저술이 미완으로 마감된 것처럼 지난 100년 동안 동양의 평화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차 대전 이후에 동양평화를 가장 위태롭게 했던 것은 안중근 의사의 조국인 한반도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그것이고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상태(휴전상태)을 유지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남과 북은 안중근 장군의 동양평화론을 중심으로 전쟁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 중국 한국 3국을 중심으로 제안한 평화정착 방법론을 이제 남북통일 추진방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남북통일 추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무한한 보고다. 파내도 파내도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이다. 안의사는 대한인 뿐 아니라 동양 3국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정신 속에 살아있다.  

요즘에는 천주교 뿐 아니라 개신교, 불교, 원불교, 대순진리회 등 각 종교에서도 안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많은 연구회가 생겨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종교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과 헌신성이 진정한 안 의사 유해송환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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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29 [08:20]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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