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부터 말하는 정책(동양평화론 - 필자)을 만일 일본이 실행만 한다면 일본은 태산같이 안정되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큰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 1910년 2월 안중근 <청취서> 54쪽
“조선의 독립은 일본에 안전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즉 일본은 조선 독립을 승인하고 조력함으로써만 조선인의 원한에서 풀려오히려 친구가 되고.....이를 통해서 동양의 평화와 세계평화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싸우지 아니하고는 인류가 누릴 자유와 평화를 못 얻을 것인가? 일본 인사들은 깊이 반성하라" - 1919.11.27 여운형의 도쿄 제국호텔 연설 중
“조선독립은......일본을 하여금 사로(邪路)로서 출(出)하야 동양 지지자(支持者)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리요" - 1919.3.1 독립선언문 중
안중근의 하얼빈 ‘의전(義戰)’은 증오와 복수의 전쟁이 아닌, 정의를 수행함으로써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적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의거(義擧)였다.
그 정신은 10년 뒤 여운형의 웅변으로 부활했다. 일제의 심장 도쿄에서 일본 지도층을 경악시킨 여운형의 웅변 속에서도 안중근에게 볼 수 있었던 정의로움과 평화사상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여운형의 웅변을 들은 일본 지성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마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감복했던 일본관헌들의 모습이 재현된 듯 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운형은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보내며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시위운동을 기획한 장본인이다. 그 운동이 바로 3.1운동이 되었다.
3.1운동은 위정척사, 애국계몽(서학), 동학 세력 등 당시 국내외 양심적인 애국세력이 사상, 신분, 빈부, 지역의 차이를 떠나 일심 단결해 일으킨 의거였다. 또한 일제에 대한 항거를 넘어, 한민족의 새로운 국체로서 수천년 이어져온 군주국가를 폐하고, 민주공화국가를 수립해 낸 대혁명이었다.
그런데 그 혁명 정신 속에 안중근 사상이 있었다.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3.1독립선언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일맥상통하는, 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평화선언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3.1운동은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3.1독립선언문은 대한민국의 헌전(憲典)이다. 그런데 민족 집단지성의 산물인 3.1독립선언에 안중근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민족지도자의 집단 지성 속에 안중근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국혼(國魂)에 안중근 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자유, 정의, 평화를 추구했던 안중근의 삶과 정신은 바로 대한민국이 지키고 기려야 할 국혼(國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