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안중근 의사 유적지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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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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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07/05/12 [1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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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님을 찾아나섭니다.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서 결의를 다지다. (2005년 8월 23일 제 1차 안중근 의사 항일유적지 탐방단)©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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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항에서 러시아령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는 탐방대원들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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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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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망강이 가까운 러시아 땅에 내렸다. 이곳은 일제시대 항일운동 본거지가 잇는 지역이다.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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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내려 단체 사진을 찍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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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등 12명의 동지들이 손가락을 잘라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결의했던 단지동맹 기념탑 앞에서 독립운동 선열들에게 묵념.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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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동앵의 취지문을 알고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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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을 전후해 항일운동 본거지였던 연추마을 입구에서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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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춘시 정부를 찾아나섰다. 앞줄 가운데 여성분이 조선족 동포로 훈춘시 정부 부시장이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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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만강이 근접한 곳에 위치한 초가집. 이곳에서 안의사가 몇 일간 묶었다는 집이다. 잡 안에는 안 의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탐방단은 훈춘 시정부에 이 초가집 관리비에 사용하라는 취지로 성금을 전달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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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시 용정에 있는 용정학교. 이곳은 독립운동 선열들을 많이 배출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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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현장 하얼빈 역 , 대원들이 당시의 상황을 듣고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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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이곳에서 평화의 총성이 울렸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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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들이 하얼빈 역을 떠나면서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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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의사가 거사 후 러시아 헌병에 의해 끌려와 조사를 받았던 곳으로 지금은 소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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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청신을 실천하고 있는 하얼빈 만방중고등학교. 젊은 조선족 청년이 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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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알빈에 있는 악명의 731 부대를 찾은 탐방대원들에게 안내원이 설명하고 있다. 이곳이 일제 말기 세균전을 연구했던 연구소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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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거사 직전에 사색을 했다는 기록을 가진 하얼빈 공원 지금은 조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해 있다. 안 의사는 유언에서 시신을 이곳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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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역 직전의 간이역으로 채가구역. 안중근 의사는 당시 이곳을 거사 장소로 지정했다가 우덕순 동지를 이곳에 남겨두고 자신은 하얼빈 역으로 이동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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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가구역 지하에 위치한 당시 여관방 입구. 우덕순 동지는 이곳에서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거사를 결행하지 못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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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행적을 연구하고 있는 조선족 어른으로 부터 안 의사와 하알빈을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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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었던 여순감옥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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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머물었던 감방 입구. 대원들의 표정이 숙연해 졌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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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감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당시 재판소 , 여순재단에서 이 건물을 매입해 보존하고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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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재판 받는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고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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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소는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단지12 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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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님의 정신을 체받겠습니다." 대원들이 유적지 탐바을 마치고 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에 들러 참배하고 ,,,(2005년 8월 30일) © 단지12 닷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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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2 [17:21]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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