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액권 발행을 추진할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새 화폐에 순국선열들의 사진을 새 도안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안중근 아카데미에서는 새 화폐가 제작될 경우 안중근 의사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길이란 의견을 제시할 예정입니다.안중근 의사 할빈 의거 100주년(2009년)을 앞둔 시점에서 안중근 의사 영정 도안 활용은 안 의사를 평화주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사랑, 동포사랑, 평화사랑의 안 의사 정신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아래 소개되는 글은 헤럴드 경제 류정일 기자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편집주> 화폐에 얽힌 에피소드
○…1956년 발행된 500환권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전면 중앙에 위치했다.<그림7> 그러나 발행 직후 대통령의 초상이 두쪽으로 찢어지거나 절반으로 접혀지는 등 손상된 화폐가 시중에 나돌았다. 항간에는 대통령을 욕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초상을 중앙에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등장했다. 이에 대통령의 한 측근은 “나라의 국부(國父)이신 대통령의 초상을 지폐 중앙에 집어넣어 용안이 찢겨지거나 접혀지는 등 욕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사이니 즉시 도안을 교체하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한은은 대통령 초상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바꾼 새로운 500환권을 2년뒤인 1958년 발행했다.
○…1962년 5월16일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는 일반인이 도안 모델로 등장했다.<그림8> 한복을 차려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당시 책처럼 생긴 통장을 들고 있는 도안은 국민들에게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이 100환권은 우리 화폐사상 유통기간이 가장 짧아 발행된지 20여일 뒤인 그해 6월10일 제3차 통화조치 실시로 새로운 화폐로 대체되며 폐기됐다.
○…1972년과 73년 발행된 5000원권과 1만원권에 등장하는 이이와 세종대왕 초상은 갸름한 얼굴에 큰눈과 오똑한 콧날 등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다.<그림9> 당시 국내 제조기술로는 은행권의 원판을 제작할 수 없어 영국의 은행권 제조회사인 토마스 델라루 사에 제작을 의뢰했는데 이때 영국인들의 정서를 기준으로 콧날을 높이는 등 인물을 서구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1972년 한은은 앞면에는 국보 24호인 석굴암 본존불을,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을 소재로 한 1만원권을 발행키로 결정했다.<그림10> 이에 따라 시쇄품에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을 받고 발행공고까지 마친 후 본격적인 유통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공고 이후 종교계의 반발이 심하고 여론에서도 특정 종교를 두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세종대왕상과 경복궁 근정전이 도안된 새로운 형태로 이듬해 발행됐다.
○…화폐에 사용되는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의 초상은 표준영정이다.<그림11> 표준영정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기준없이 제각각 그려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1973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동상ㆍ영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표준 그림을 제작한 것으로 이순신은 월전 장우성, 이황은 현초 이유태, 이이는 일랑 이종상, 세종대왕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각각 그린 그림이 표준영정으로 채택됐다.
○…지난해 더이상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돼 폐기처리된 지폐는 10억3000만장, 금액기준으로 5조9764억원에 달했다. 폐기된 지폐의 무게는 1172톤으로 이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경부고속도로를 188회 왕복할 수 있고 쌓아두면 에베레스트 산의 12배 높이에 달한다.
폐기되는 지폐는 장당 수천조각으로 나뉘고 700~800g 무게의 소시지나 케익 형태로 사출돼 재활용 업체를 통해 전산실 바닥재나 자동차의 충격완화장치 등에 재활용된다.
현대 화폐 변천사
1910년 한일 합병을 단행한 일본은 이듬해 3월 구 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개편했다. 조선은행은 이후 40년 가까이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하며 태평양전쟁 중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도 통용되는 은행권을 남발해 일본의 전쟁비용 조달 지원책을 담당했다.
1950년 6월12일 설립된 한국은행은 6ㆍ25전쟁 중 최초의 한국은행권을 발행했고 전후에는 통화개혁을 단행, 화폐단위를 100분의 1로 평가절하한 ‘환’ 표시 화폐를 발행했다. 또 5ㆍ16 군사정변 이후에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일환으로 화폐단위를 10분의 1로 평가 절하한 한글 ‘원’ 표시 화폐를 발행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은행권= 조선은행권은 1914년 100원권을 시작으로 해방전까지 총 18종이 발행됐다. 100원권 도안은 재복을 상징하는 신인 대흑천(大黑天)을 사용했고 10,5,1원권에는 긴 수염에 관을 쓴 노인이 사용됐는데 이 노인에 대해서는 조선말기 문장가인 운양 김윤식의 초상이라는 설과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성의 화신인 수(壽)노인이라는 설로 양분돼 있다.<그림1> 해방 뒤 미 군정에 의해 발행된 조선은행권은 총 13종으로 대부분의 권종에는 긴 수염에 관을 쓴 노인상이 사용됐고 1949년 발행된 10,5원권에는 독립문이 새로운 도안으로 채택됐다.<그림2>
▶최초의 한국은행권=1950년 6월 한국은행법에 의해 설립된 한국은행은 설립당시 통용되던 조선은행권과 일본정부의 소액 보조화폐를 승계했고 6ㆍ25전쟁중인 1950년 최초의 한국은행권인 1000원(圓)권과 100원권을 발행했다.<그림3> 전쟁중 북한군이 조선은행권을 불법 발행함에 따라 1953년 1월까지 5차례에 걸쳐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켰다.
1953년 2월15일 정부는 한국전쟁 여파로 인한 경제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는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했고 1953년 지폐 형식인 1000,100,10,5,1환권이 발행됐다.<그림4> ▶경제개발계획 이후 화폐개혁=1962년부터 추진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화폐단위는 또다시 ‘환’에서 ‘원’으로 변경(10환=1원)됐다. 한은은 500,100,50,10,5,1원권 등 6종의 새로운 은행권을 발행했고<그림5> 1966년에는 10,5,1원 주화가 새로 도입됐다.
1970년대는 현행 액면체계가 확립된 시기로 한은은 1970년 100원화, 1972년 50원화를 발행, 은행권을 주화로 대체했고 국내 경제의 급속 성장에 따른 고액권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1972년 5000원권, 1973년 1만원권을 발행했으며 1975년 1000원권을 발행했다.<그림6> 이후 한은은 1982년 500원권을 주화로 대체하고 1983년 주화 종류별로 불일치되던 앞뒷면의 액면표시 등을 조정, 현용 화폐 체계를 완성했다. 특히 그해 6월 이후 발행된 화폐에는 부분노출 은선, 광간섭무늬, 미세문자, 시변각잉크 등 위변조 방지요소가 강화됐다.
류정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