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의 의거현장인 하얼빈은 당시 러시아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안 의사 신병을 일본에게 넘긴 것은 국제법상 하자가 있다는 문건이 발견됐다. ©단지12 닷컴 | |
신운용 연구원, 이토 히로부미 등 전문기록 발견 안중근이 러시아령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 된 이후 그에 대한 재판권은 일제가 아닌 러시아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그 동안 우리 역사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본의 문건이 최근 발견돼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중근 장군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일제가 하얼빈 의거와 같이 조선인에 의해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에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국제법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사료가 발견된 것이다.이같은 판단을 한 일제 수뇌부 인사는 다름 아닌 안중근 장군에게 사살당하기 2년 전의 이등박문이었다는 것.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안 의사 의거 2년 전인 1907년 하얼빈에서 한국인 김재동 등이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에 관한 기록을 연구하는 과장에서 이같은 문건을 발견하게 됐다고 최근 일본의 외교사료관에서 발견해 자료를 18일 공개했다.
김재동 사건 직후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였던 카와카미 도시히코는 러시아가 그의 신병을 넘겨주려 하지 않자 고무라 주타로 외상에게 전문을 보낸다.
카와카미는 "일본이 한국인에 대해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고 하면 인도받지 않는 것이 지당하다고 사료되나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훈령을 청한다"고 문의했다.
그러자 고무라 외상은 카와카미에게 "한국인들의 신병을 인도받으라"는 훈령을 내렸고, 일본 정부는 결국 이들을 넘겨받아 직접 재판해 사형 등을 선고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재외 한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의 재판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를 논의했는데, 이듬해 이등박문이 사건과 관련해 하야시 다다스 외상에게 보낸 전문이 주목된다.
이등박문은 전문에서 "재외 한인 재판사무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한다"며 "그러나 이 경우 법률 제정 등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실행상 지장이 적지 않으므로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등박문 역시 하얼빈에서 조선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을 일본이 직접 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신 연구원은 "당시 국제법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러시아에서 재판을 주관해야 하고 일본에 신병을 인도하려면 한국과 협의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사료에서 보듯 일본은 `편의상' 재외 한인에 대한 사법권을 불법적으로 가져갔고 그 부당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안중근 의사는 당시 법정에서 일본에 의한 재판의 부당성을 수 차 지작한 바 있다. 사진은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의 최후 법정 © 단지12 닷컴 | |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어 당일 밤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신병이 인계, 뤼순 감옥으로 이송했고 이듬해 2월 7일 첫 공판을 시작 6회공판을 통해, 14일에 사형을 선고, 의거 5개월 후인 3월 26일에 안중근은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 일제 법정에서 안중근은 최후 진술등을 통해 자신이 일본에 의해 재판을 받는 것과 자신을 독립군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일반 형사범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했었다.
그 동안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러시아가 자국령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안중근의 신병을 일본총영사관에 인계한 것은 당시 국제법에 어긋난 것이란 지적이 있어왔다.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일본 측은 러시아가 안 의사의 신병을 스스로 넘겨줬기 때문에 일본 법정 재판은 당연한 조치였다고 주장해 왔다"며 "이번에 발견된 이토 히로부미의 전문 내용 등은 일본 학자들 논리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안중근 재판이 러ㆍ일간 정치논리로 이뤄졌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일본의 치밀한 공작의 산물이라는 측면을 새로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