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찌르자가 아니라 평화공존하자는게 안의사의 뜻"
▲ 안중근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최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사는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 날 이 시대의 실천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 |
“안중근 의사는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의 실천의 대상이다.” 지난 26일은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수뇌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순국 99주기였다. 올해는 또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와 안 의사를 추모하는 여러 단체들은 뮤지컬, 음악회, 출판사업 등 갖가지 추모 사업을 개최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안 의사의 순국 99주기였던 26일 여의도에선 ‘고독한 영웅’이라는 제목의 한 소설책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30년이라는 안 의사의 짧지만 굵은 생과 그의 사상을 재조명한 이 소설책 출판은 <안중근 청년아카데미>가 기획했다.
청년아카데미(
www.danji12.com)는 안 의사의 시대정신과 청년정신을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전수, 계승·발전시키고자 2007년 탄생한 단체다.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최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사는 31살의 짧은 인생을 사시면서 영웅적이고 역동적인 청년의 기상을 풍긴 분인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안 의사를 추모하는 단체들이 연세가 많은 분들 중심으로 추모사업과 기념사업이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안중근 운동이야말로 한국사회 청년운동의 좌표라는 생각 때문에 청년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안중근 청년운동을 새로 전개하게 됐다”고 설립 배경을 밝혔다.
그는 “요즘 흔히 말하는 안사모(안중근 의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안중근 팬클럽 측면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안중근 운동을 체계화하는 게 설립 취지”라고 부연했다.
안 의사는 거의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 모두 추모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대표도 “북한에서도 안중근 우표와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주화를 만들어 추모했고, 남한에서도 안중근 우표와 광복 50주년 기념주화를 만들었듯, 남북이 만든 주화와 우표 속에 동일인물이 있는 것은 안 의사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의사에 대한 소설책을 출판을 기획한 이유와 관련, “안 의사의 유해찾기는 남북이 공동으로 3년전부터 추진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그리 성과가 있지 않다. 사실상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 “안 의사가 돌아가신 지 100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론 속에 그에 못지않게 안중근 정신찾기 운동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번에 소설책을 낸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안 의사를 ‘고독한 영웅’이라 표현했을까. 안 의사는 흔히 우리 독립운동사의 획을 그은 민족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데 말이다.
정 대표는 “흔히 안 의사에 대해 민족의 영웅, 민족의 혼, 불멸의 영웅이라는 수식어를 쓰는데, 우리가 발행한 소설의 제목이 ‘고독한 영웅’인 이유는 안 의사의 30년 생애는 매우 영웅적이었지만 안 의사가 돌아가신 이후에 그 분이 남긴 유언들이 제대로 지켜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 의사의 가장 큰 유언은 조국의 완전한 독립이었다”고 전제한 뒤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흐른 지금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안 의사의 조국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며 “이는 안 의사가 말한 완전한 독립에 못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이 단계에서 안 의사의 시신과 유해를 찾았다손 치더라도 (조국이) 두 개로 쪼개진 현 상황에선 그 분의 유해를 고국으로 이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안 의사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가슴 아픈 얘기를 했다.
정 대표는 특히 “안 의사의 유해를 고국으로 오게 하려면 남북이 빨리 통일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 안 의사의 유해가 오는 것이 안 의사의 유언을 실현시켜 주는 것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최근 뜻하지 않게 안 의사가 집중 재조명되는 사건이 있었다. 준우승으로 끝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봉중근 선수의 활약 때문이다. 봉중근 선수는 5차례나 벌어진 한·일전에서 3차례나 선발투수로 나와 2승을 따내는 등 눈부신 역투를 펼쳤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봉중근 선수의 이름이 안 의사 같다는 점에 착안, ‘의사 봉중근’이라는 별칭을 달아줬다. 봉중근 선수의 인기가 높아져 갈수록 안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진 셈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우리 한국야구가 일본 팀을 이기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국민들도 박수치고 좋아하고, 나도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봉중근 선수의 야구 실력, 일본상대를 제압한 것을 안 의사와 연결시켜 이토를 제거한 것을 연상하게 패러디하고, 네티즌들의 이런 패러디를 영향력이 큰 일간신문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칫 이것이 일본 젊은 사람들에게 반한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정 대표는 “이것은 동양의 평화를 주창했던 안 의사의 정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안 의사는 순국 당하는 날 마지막 순간까지도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며 “동양평화론은 일본과 한국, 중국 등이 각기 주권을 인정해 서로 협력하고 평화를 유지해 함께 잘 사는 공동번영의 정책인데, 오늘날까지 안 의사 하면 무조건 일본을 응징하고 때려 부수는 것으로 많은 분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중근 선수를 안 의사와 비교해 패러디한 것은 어쩌면 애국심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에 정 대표에게 질문해 봤다.
정 대표는 “그 정도는 애교적인 표현이고, 깜직한 발상으로 이해된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것들이 확대 재생산돼서 일간 신문에서 크게 확대하고,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역시나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그는 “그런 것들이 자칫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에게 반일 감정을 유발시키면 앞으로 먼 미래의 한일관계에 영향이 있는 것”이라면서 “안 의사의 정신에서 일본은 무조건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거기에 안 의사를 지나치게 연결시키는 것도 아마 안 의사의 본뜻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그러면서 “그래서 이번에 안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안 의사의 평화사랑, 진정한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정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안 의사와 관련해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안 의사의 사상은 한 마디로 ‘평화’로 요약될 수 있다”고 소개한 뒤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우리 남북관계도 안 의사의 정신과 연결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얽혀버린 남북문제의 고리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안 의사의 평화사상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또 “무조건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고 추모할 것이 아니라 안 의사의 정신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라면서 “안 의사는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 날 이 시대의 실천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데일리안 = 김현 기자]